◆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
巨野 추진 법왜곡죄, 수사기관무고죄 등 삼권분립 훼손
민주당 비주류 소멸 처음, 李 ‘아버지’ 발언 야단쳤어야
尹 정치 실종 책임, 野 국정파트너 삼고 인적 쇄신해야
與, 대통령에 바른말 하고 정치개혁 나서야 신뢰 회복
22대 국회가 임기 시작 후 40일을 넘겼지만 폭주하는 거대 야당과 무능한 여당의 극한 대립으로 정상적으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은 운영위원장·법제사법위원장 등 11개 주요 상임위원장 자리를 일방적으로 선점하더니 이재명 전 대표 연루 의혹 사건 수사 검사들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발의하고 행정부·사법부 흔들기에 나서고 있다.
4·10 총선 참패 이후에도 제대로 쇄신을 하지 못한 국민의힘은 야당의 독주 앞에서 무력함을 드러냈고 요즘에는 차기 당권을 놓고 진흙탕 집안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은 7일 서울 서대문구 봉원동 정일형·이태영 박사 기념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22대 국회의 최대 과제는 정치 회복”이라며 “여야가 서로 의견 차이를 인정하고 진영 논리에서 벗어나 대화를 통해 타협점을 찾아야 한다”고 호소했다.
민주당 출신인 정 회장은 최근 민주당의 움직임에 대해 “(이 전 대표의 사법 리스크를 덮기 위한) 방탄은 삼권분립을 훼손하는 행태이므로 멈췄으면 좋겠다”고 지적했다.
이어 여권을 향해서는 “야당을 국정 동반자로 인정하고 여야 정책협의체와 중진회의, 헌정회 중재모임 등을 상설하라”고 제언했다
-22대 국회의 최대 과제를 꼽아달라.
△최대 과제는 정치 회복이다. 21대 국회 시절은 한마디로 대결의 정치 시대였다. 22대 국회에서는 여야가 큰 반전을 이뤄 정치를 되살리도록 간절히 기원하고 있는데 아직까지 그렇게 되지 않고 있다. 여야가 상생을 통해 협치를 복원해야 한다.
-22대 국회 들어서도 극한의 정치 대립이 더 심화하는 까닭은 무엇인가.
△무엇보다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이해하려는 민주주의 기본 원칙을 따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진보·보수 진영의 논리와 지역주의에 빠져 상대방을 인정할 여유를 갖지 못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여야가 힘의 논리를 너무 쉽게 앞세우려 하니 대립이 심화되고 있다.
서로 절충하면서 타협할 생각을 하지 않고 야당은 다수결로 밀어붙이려고 하고, 정부와 여당은 대통령 거부권과 사정권 행사로 맞서고 있다. 이와 관련해 윤석열 대통령의 책임이 매우 크다.
정치 친화적이지 못했고 야당을 ‘국정의 동반자’로 여기지 않았다. 집권 후 2년이 지나도록 야당 대표를 딱 한 번 만났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일이다.
-국회에서 대화와 타협·포용의 정치를 복원하기 위한 해법은 무엇인가.
△여야가 진영을 넘어 진보와 보수의 가치를 서로 인정하는 것이다. 다수결, 거부권 및 사정권 행사와 같은 힘의 논리는 자제해야 한다. 대통령이 야당을 동반자로 여기고 자주 만나 대화로 설득하면서 상생과 협치·통합의 정치를 추구해야 한다.
구체적인 방안은 우선 국회법을 개정해 여야의 만남·대화·토론을 강제하거나 유도하는 조항을 넣는 것이다.
아울러 여야가 참여하는 상설 정책협의체, 상설 중진회의를 만들어놓아야 한다. 헌정회를 통한 중재모임도 상설할 필요가 있다.
또 다른 방안은 미국·영국·독일처럼 국회 내에서 여야 의원들이 지정석 없이 자유롭게 섞여 앉도록 하는 것이다. 이러면 자연스럽게 여야 의원들이 대화할 수 있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이 7일 정일형·이태영 박사 기념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더불어민주당에서 제기되는 ‘법왜곡죄’, ‘수사기관 무고죄’ 도입론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다. 권욱 기자
-국회가 문을 열자마자 여야의 각종 특검법 발의로 시끄럽다. 특검법 갈등을 어떻게 풀어야 하나.
△특별검사제는 권력기관 또는 수사기관이 의혹에 연루돼 검찰이 엄정하게 수사·기소하기 어려울 경우에 예외적으로 인정되는 것이다.
그동안 여러 차례 특검이 도입됐지만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특검을 제외하면 뚜렷한 성과가 없었다.
가능하면 검찰에 수사·기소를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만 현재 발의된 특검법 중에서 채 상병 특검법과 김건희 여사 특검법은 대통령 및 대통령 가족이 대상이라는 점에서 숙의하되 필요할 경우 윤 대통령이 용기를 내어 허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법 체계 개편과 관련해 민주당이 ‘법 왜곡죄’ ‘수사기관 무고죄’ 도입론을 제기하고 심지어 ‘법관 선거제’도 거론하고 있는데.
△법 왜곡죄는 판사나 검사가 그릇된 목적으로 실체적 진실을 외면하거나 부당하게 법을 적용할 경우 책임을 묻자는 것이다. 그러나 자칫 정치 권력이 사법부 장악까지 시도할 가능성이 높아져 장점보다 단점이 크다.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하게 된다.
법 왜곡죄가 도입되면 사건 관계자들이 툭하면 법원의 결정과 검찰의 판단에 불응하며 고소·고발을 해 사법부를 흔들 수 있다. 민주당이 이 전 대표 관련 의혹 사건에 대한 ‘방탄’을 시도한다는 논란을 사고 있는 만큼 법 왜곡죄를 도입하지 않는 게 좋겠다.
법관 선거제도 얼핏 민주주의적인 것 같지만 문제가 더 많은 제도다.
지역·학연·혈연적 편향성이 있는 우리나라에서 법관을 선거로 뽑게 되면 판사들이 학연·지연·혈연 인맥 등으로 분열될 우려가 있다. 이것이 사실상 판사 공천제도처럼 운영되면 판사가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고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할 수 있다.
수사기관 무고죄의 취지는 수사기관의 표적 수사를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느 정도까지를 표적 수사를 봐야 할지 규정하기 어려우므로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식으로 남용될 위험이 있다. 이 역시 정상적인 사법 체계와 삼권분립 원칙을 훼손할 가능성이 높다.
-민주당이 전 국민 1인당 25만 원 지급 공약과 관련해 ‘처분적 법률’ 도입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데.
△법안이 처분·조치 등의 구체적·개별적 내용을 담고 있어 입법권으로 행정 기능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 위헌은 아니지만 행정부가 대단히 비정상적인 상황에 처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나 활용할 수 있는 것이지 지금 남발할 사안이 아니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이 7일 정일형·이태영 박사 기념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민주당 내 비주류 목소리가 사라진 것에 대해 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권욱 기자
-최근 민주당이 당헌을 개정해 ‘부정부패 연루 당직자의 자동 직무 정지’ 조항을 폐지하고 ‘대선 1년 전 당권·대권 분리’에 대해서도 예외 조항을 넣었다.
△그것은 위인설법(爲人設法)이다. 당 대표에게 불리한 조항을 사실상 다 없앤 것이 아닌가. 그런 것은 자제해야 한다.
-최근 민주당의 일부 최고위원이 “민주당의 아버지는 이재명”이라고 공개 발언해 사당화(私黨化) 우려를 심화시켰다.
△그런 일이 발생하면 이 전 대표가 “당신과 내가 몇 살 차이 난다고 아버지라고 하느냐. 그것은 나를 모욕하는 것”이라고 야단쳤어야 했다. 그렇지 않고 (감언을) 즐기는 것처럼 비치니 아부하는 이들이 자꾸 생기는 것이다.
지금 민주당은 (이 전 대표에 대해) “노(No)!”라고 말하는 (비주류의) 목소리가 없는 정당이 됐다. 1955년 당시 신익희 선생이 민주당을 창당한 이래 당내에 비주류가 깡그리 없어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매우 서글프고 두렵고 걱정스러운 현상이다.
-민주당이 당내 민주주의를 복원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무엇보다 이 전 대표의 노력이 필요하다. 당내에서 자유롭게 대화와 토론을 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줘야 한다. 의원과 당원들도 노력해야 한다. 어렵더라도 바른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바른 ‘민주 정당화’를 할 수 있다.
-국민의힘이 4·10 총선 참패 이후에도 위기의식 없이 내부 밥그릇 싸움이나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차기 당 대표 선출을 위한 전당대회를 앞두고 당을 어떻게 쇄신해야 하는가.
△우선 국민의 지지를 크게 받을 수 있는 인물들을 당 지도부와 차기 대통령 후보감으로 키워야 한다. 이와 함께 선거제도를 개혁해 지역 편중성을 없앤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해야 한다.
그리고 국민의힘이 앞장서서 제왕적 대통령제를 고치는 개헌을 추진하고 정치 개혁에 나선다면 국민적 지지를 받을 것이다.
-국민의힘이 22대 국회 개원 후 무기력하고 무능한 모습에서 탈피해 리더십을 제대로 발휘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전당대회에서 뽑힌 새 지도부가 야당을 동반자 관계로 받아들여야 리더십을 회복할 수 있다. 새 지도부는 대통령에게도 바른말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정대철 대한민국헌정회 회장이 7일 정일형·이태영 박사 기념관에서 서울경제신문과 인터뷰를 갖고 윤석열 대통령에 대해 인적 쇄신 필요성 등을 제언하고 있다. 권욱 기자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고 있다. 윤 대통령이 리더십을 세우려면 무엇을 해야 하는가.
△정치 회복을 남은 임기의 최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자신부터 먼저 변해야 한다. 일방통행식 국정 운영 방식을 바꾸고, 야당·언론·시민단체들을 수시로 만나 소통해야 한다.
야당을 국정 운영의 한 축으로 받아들여 연정까지도 고려해야 한다. 인적 쇄신도 필요하다. 4·10 총선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 교체 이외에는 인적 쇄신을 제대로 보여준 것이 없다. 정치 경험이 많은 사람들을 중용해야 한다.
차기 총리 인선부터 정치 경험이 많고 야당과 함께 갈 수 있는 인물로 고를 필요가 있다. 여권 내부적으로는 통 큰 포용력으로 사람들을 폭넓게 끌어안아야 한다. 윤 대통령으로서는 대선 승리를 일군 선거연대를 스스로 해체한 모양새가 됐다.
2030세대에 대한 호소력을 갖춘 이준석 전 대표를, 후보 단일화 상대였던 안철수 의원을, 여성 정치인으로서 국민적 사랑을 받는 나경원 의원을, 그리고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을 다시 이해하고 포용하는 ‘폭넓은 정치인 대통령’이 되어야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
◆He is…
1944년 서울에서 독립운동가 출신인 고(故) 정일형 신민당 의원과 한국 최초의 여성 변호사인 고 이태영 여사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경기고와 서울대 법학과 및 같은 대학 대학원을 졸업했다.
‘3·1 민주구국 선언’ 사건에 연루된 부친이 1977년 대법원 판결로 의원직을 상실하자 그해 6월 종로·중구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당선됐다.
1978년 신민당에 입당한 후 줄곧 민주당 계보 내에서 정치 활동을 했으며 16대 국회에 이르기까지 5선 의원을 지냈다. 새천년민주당 대표, 민주당 상임고문 등을 역임한 뒤 지난해 3월 헌정회장에 취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