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엔 당신이 궁금한 100가지 일 이야기
기존 주 40시간에서 주 48시간으로 근무시간 연장
인구 감소와 높은 실업률, 숙련된 인력 부족이 배경
연간 근로시간 유럽서 가장 많은 국가인데 더 늘어
지중해성 기후로 낮잠 자는 ‘시에스타’도 사라질까
모든 국가 공통된 문제, 해결 방식으론 부적절 평가도

전 세계적으로 주4일 근무제 도입 등 근무시간 단축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그리스에서는 이번 주부터 주6일 근무제가 현장에 도입됐다. 유럽에서 직장인들에게 주 5일도 모자라 주 6일 일을 시키겠다는 그리스 정부의 발상은 과연 시대적 흐름에 역행하는 것일까. 일 년 내내 여유로운 삶을 영위할 것만 같은 세계적인 휴양지 그리스에서 이 같은 정책이 성공적으로 안착할 수 있을지 그리스 노동시장의 변화를 들여다봤다.

주6일제 어떻게 일하고, 또 어떻게 쉬나

그리스 공영방송 ERTNews 등에 따르면 그리스에서는 지난 7월 1일(현지시간)부터 주6일 근무제가 근로현장에 도입됐다. 지난해 9월 통과된 새 노동법에 따라 근로자들은 앞으로 주 6일, 최대 48시간까지 일할 수 있다. 기존에 그리스는 한국을 포함한 대부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최대 주 40시간까지 근무가 가능했지만 앞으로 하루 최대 2시간씩 추가 근무하거나 하루(8시간)를 더 일할 수 있게 됐다. 반대로 말하면 그동안 기존에 하루 최대 6시간 밖에 일하지 않았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모든 분야에서 전면적으로 주6일 근무제가 도입되는 건 아니다. 소매와 제조, 의료 등 일부 분야에서 고용주는 탄력적으로 주6일 근무제를 도입해 운영할 수 있다. 반면, 관광 및 식음료 서비스업은 제외된다. 주6일 근무제를 원할 경우 고용주가 반드시 사전에 근로자에게 통보해야 한다. 근로자들은 추가 근무에 대해서는 통상 임금의 40%의 추가 수당을 받을 수 있다. 더 일한 만큼 임금을 더 받게 돼 임금 체계가 개선될 것이란 기대와 함께 장기간 노동으로 근로자들의 삶의 질이 하락할 것이란 우려가 공존한다.

그리스 정부는 새로운 노동법이 행정을 단순화하고, 수습 기간을 최대 6개월로 줄이며, 초과 근무를 명확히 해 법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됐다고 전했다. 그리스 공영방송 ERTNews는 그리스의 주6일 근무제는 탈세로 이어지는 신고되지 않은 노동을 근절하는 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고 평가했다.

관광객들이 지난 6월 11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EPA연합뉴스

관광객들이 지난 6월 11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의 아크로폴리스 파르테논 신전 앞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EPA연합뉴스

‘시에스타’ 국가 그리스에서 가능할까…

한국인들에게 그리스의 소식이 낯설지 만은 않다. 2000년대 초반까지 한국에서는 사기업은 물론 공무원, 학교까지도 토요일 오전까지 운영하는 주6일 근무제를 경험했다. 현재 주6일 근무제를 운영 중인 국가는 싱가포르, 홍콩, 인도 등이다.

그러나 그리스가 택한 주6일 근무제는 과거 우리와는 다르다. 그리스에서는 우리보다 먼저 주5일 근무제가 정착했고, 실제 기존 근무시간도 우리보다 적은 수준이다. 이제 막 ‘주52시간(법정근로 주 40시간+연장근로 주 12시간)’이 도입된 우리 입장에서 연장근로를 포함한 주 48시간이란 시간은 그리 가혹한 근로 환경으로 와닿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러한 분위기는 지리적인 조건도 영향을 끼친다. 여름철 고온 건조한 지중해성 기후인 그리스는 오후 2~4시까지 낮잠을 자는 ‘시에스타(Siesta)’를 운영 중인 국가이기도 하다. 모든 분야에서 적용되는 것은 아니지만 여전이 다양한 분야에서 이런 풍습이 유지되고 있다. 특히, 그리스는 지난 6월 한낮 기온이 40도를 오르내리는 가마솥 더위로 관광객이 숨지거나 실종되는 사고가 발생할 정도로 극심한 폭염에 시달리고 있다.

환경은 직장인들의 근무 여건에도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한 때 게으름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시에스타는 최근 독일 등에서 업무효율을 높일 수 있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상기후로 여름철 폭염이 지속되면서 조금 더 일찍 일을 시작하는 대신 뜨거운 낮시간에 휴식을 취하자는 것이다. 이런 분위기와는 달리 그리스가 근무시간 연장을 택하면서 유럽 이웃 국가들 역시 시대적 역행이란 평가를 내놓고 있다.

그리스 내에서도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법적으로는 근로자가 고용주의 요구를 거절할 수 있지만 실상 근로 현장에서는 제대로 된 보상 없이 추가 노동을 강요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또 앞으로 그리스에서 주5일 근무제가 사라지고 주6일 근무제가 표준으로 자리잡게 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이 때문에 지난해 관련 법 도입을 앞두고 노조의 격렬한 반대 시위가 열리기도 했다. 

그리스 공무원 노조 아데디의 아키스 소티로풀로스 집행위원장은 “거의 모든 다른 문명 국가들이 주 4일제를 시행하고 있을 때, 그리스는 다른 길을 가기로 결정했다”고 비판했고, 퇴직교사 노조 그리고리스 칼로모이리스 위원장은 “이 야만적인 조치는 노동력 부족이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며, 실직한 그리스 젊은이들은 매우 불공평하다고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스의 좌파 야당 시리자는 “이러한 현상이 두뇌 유출을 악화시킬 뿐”이라고 지적했다. 

경제난 심각한 그리스 정부로선 불가피한 선택?

그리스에서 주 6일 근무제를 도입하려는 시도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한때 고도성장을 이어가던 그리스 경제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유로존 탈퇴 위기에 놓일 정도로 심각한 위기를 맞았다. 그리스는 2009년 국가부도 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 유럽중앙은행(ECB)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았고, 당시 ECB 등의 기관들은 그리스 정부에 강력한 긴축을 요구하며 근로시간을 늘릴 것을 요구했다. 당시 그리스 정부가 반대했지만 이번에는 자진해서 근로시장 연장을 도입하고 나선 것이다.

2019년 우파 정부인 키리아코스 미토타키스 총리 취임 이후 그리스 정부는 공무원 수를 대폭 줄이고, 연금 등 복지 혜택을 과감히 축소해 부채를 조기 상환하며 2022년 3월 IMF 구제금융을 졸업했다. 이러한 뼈를 깎는 노력으로 그리스는 지난해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35개국 중 경제 및 금융지표로 종합점수에서 2년 연속 1위를 차지했다. 그리스의 경제성장률은 관광업 회복에 힘입어 2021년 8.5%, 2022년 5.9%로 유로존 평균 2배에 달하는 성과를 이뤘다. 

다만, 그리스는 저출산과 높은 실업률, 숙련된 인력 부족, 높은 인플레이션 등을 해결 과제로 남겨두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근로시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게 그리스 정부의 판단이다.

오랜 경제난과 높은 실업률, 낮은 임금 등으로 그리스에서는 투잡, 쓰리잡이 일상화됐다. 주6일 근무제가 도입되면서 임금이 상승하고, 매년 최저 임금 인상도 이뤄지고 있어 생활고를 겪고 있는 국민들 입장에선 환영할 만한 일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그리스 사무직 근로자의 월 평균 임금은 현재 약 1250유로(약 187만 3000원)이며, 정부는 2027년까지 1500유로(약 224만 8000원)까지 인상한다는 계획이다.

그리스 폴리티스앤파트너스 로펌의 노동법 담당인 엠마누일 세베야키스 변호사는 독일 도이체벨레(DW)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미신고 노동을 근절하고 무료 직원 교육과 같은 인센티브를 제공해 진화하는 시장 수요에 적응하고 기술을 향상하는 데 도움을 줌으로써 숙련 노동 시장의 구멍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장기간 근무 대신 효율성 높이는 구조적 변화 불가피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6일 근무제는 시대를 역행하는 정책이란 지적이 나온다. 여러 나라에서 주4일제 실험을 통해 더 적게 일하고 효율성을 높여 높은 결과물을 얻어낼 수 있다는 보고가 잇따라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유럽에서는 독일, 벨기에, 프랑스, 영국, 스페인, 아이슬란드와 같은 여러 나라의 회사들은 다양한 단축 근무 모델을 실험하고 있다. 주 40시간 근무를, 하루 10시간씩 주4일로 전환하거나 기존 근무시간의 80% 수준으로 단축하면서도 급여를 유지하는 방안 등이다. 올해 초 독일에서는 국영 철도 회사인 도이치반 노사가 표준 주당 근로시간을 38시간에서 35시간으로 점진적으로 줄이기로 합의하기도 했다.

그리스는 이미 유럽 내에선 근무여건이 팍팍한 국가로 유명하다. 2022년 OECD 통계에 따르면 그리스의 연간 근로시간은 1886시간으로 회원국 가운데 7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리스보다 오래 일하는 나라로는 콜롬비아, 멕시코, 코스타리카, 칠레, 대한민국, 이스라엘이 있지만 유럽 국가 중에서는 근로시간이 가장 긴 국가다. 한국(1901시간)과 비교하면 15시간 적고, EU 평균 근로시간(1571시간)과 비교하면 315시간이나 많다.

유럽연합(EU)의 통계 기관인 유로스타트(Eurostat)에 따르면 그리스인들은 이미 유럽에서 가장 긴 일주일 평균 41시간을 일하지만 훨씬 더 적은 임금을 받고 있다. 낮은 임금, 높은 실업률, 인구 감소와 같은 많은 문제가 그리스 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공통된 현상이라는 점도 그리스 정부의 주장 설득력을 잃게 한다.

독일 국제안보문제연구소의 옌스 바스티안 연구원은 “그리스의 이러한 방식의 임금 인상은 많은 시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두 가지 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이전의 임금 수준과 높은 인플레이션을 개선하지 못할 것”이라며 “그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미 주5일 이상 일해왔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고 꼬집었다.

<편집자주> 우리는 하루의 많은 시간을 직장에서 보내고 ‘일의 기쁨과 실망’ 속에서 몸부림치곤 합니다. 그리고 이는 옆 나라와 옆의 옆 나라 직장인도 매한가지일 겁니다. 먹고 살기 위해선 결코 피할 수 없는 ‘일 하는 삶’에 대해 세계의 직장인들은 어떤 고민을 하고 있을까요. 앞으로 매주 일요일 ‘일당백(일요일엔 당신이 궁금한 100가지 일 이야기)’을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글로벌 미생들의 관심사를 다뤄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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