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北에 대해 불만 표출”…”북중관계 변화 당분간 이어질 가능성”
요즘 중국 외교가에선 북중 관계가 ‘미묘하게’ 나빠지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북한은 작년 8월 압록강 신의주-단둥 국경을 통해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3년여만에 대규모 인적 왕래를 재개했고, 비슷한 시기 평양-베이징 항공편을 다시 가동하며 북중 교류의 기지개를 켰다.
연초까지만 해도 북중 양국은 수교 75주년인 올해를 ‘조중(북중) 우호의 해’로 선언하고 고위급 왕래에 나서며 활발한 교류를 예고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달 19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북한을 방문해 사실상의 ‘군사 동맹’ 수준으로 양국 관계를 격상한 시점을 전후로 심상치 않은 기류가 눈에 띄게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달 한국에선 중국 랴오닝성 다롄에 2018년 설치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발자국 기념물이 제거된 사진이 보도됐다.
그보다 앞서선 베이징에 있던 북한 외교관이 지난 4월께 중국 당국의 밀수 조사로 자택 수색을 당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그런가 하면 북한이 관영매체인 조선중앙TV와 조선중앙방송 대외 송출 수단을 지난달 20일부터 중국 위성에서 러시아 위성으로 전환했다는 소식도 들렸다.
북한 내부적으로 중국인 접촉을 통제하는 등 민간 교류가 막히고 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올해 초 대만 총통 선거 후 중국의 우방국들이 앞다퉈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는 입장을 밝히는 가운데 북한 인사나 매체들이 공개적으로 대만 문제를 거론하지 않은 점을 북중 관계 변화의 신호로 보는 시각도 있다.
러시아가 북한에 교류 확대 등 ‘선물’을 주거나 앞장서서 유엔 안보리 대북제재의 힘을 빼려 한 것과 달리 중국이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인 점이 이런 변화의 근거로 지목되기도 했다.
이보다 직접적으로 북중 관계의 변화를 엿볼 수 있는 것으로 중국의 발언이 꼽힌다.
중국 외교부는 지난해 9월 러시아에서 열린 북러 정상회담에 대해 “북한 지도자의 러시아 방문은 조러(북러) 사이의 일(按排)”이라며 말을 아꼈다.
올해 북러 정상회담 직전인 지난달 13일에는 “러조(러북) 양자 교류의 일로, 이에 대해 논평하기에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원칙적으로 말하자면, 중국은 러시아와 관련 국가(북한)가 전통적 우호 관계를 공고화하고 발전시키는 것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이 평양에서 만난 당일인 지난달 19일엔 “중국은 줄곧 사안 자체의 시비곡직(是非曲直·옳고 그름)에 근거해 (한반도 문제에서) 자기 입장을 결정하고, 자기 방식으로 계속해서 반도 사무에서 건설적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는 표현을 꺼내든다.
중국이 ‘시비곡직’이라는 말을 쓴 것이 처음은 아니다.
가령 중국 외교부는 2014년 센카쿠(尖閣·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열도가 자국 영토라는 주장을 펴면서 “시비곡직과 역사적 경위는 모두 분명하다”고 했다.
2017년엔 왕이 외교부장이 인도와 국경 분쟁과 관련해 “이번 사안의 시비곡직은 매우 분명하다”고 말했다.
“시비곡직에 따라 입장을 결정한다”는 표현 역시 새롭지는 않다.
시 주석은 우크라이나 전쟁 개전 직후인 2022년 2월 푸틴 대통령과 통화에서 “중국은 우크라이나 문제 자체의 시비곡직을 근거로 입장을 결정한다”면서 “냉전적 사고를 지양하고 각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중시·존중하며 협상을 통해 균형 있고 효과적이며 지속가능한 유럽 안보 체제를 만들어야 한다”고 한 바 있다.
서방 진영이 일제히 러시아를 비판하는 가운데 ‘시비곡직’과 ‘각국의 합리적 안보 우려’를 연결 지음으로써 사실상 러시아에 힘을 실어준 것으로 해석된 말이었다.
중국이 이런 ‘시비곡직’을 한반도 문제에서 언급한 사례로는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사태 때가 있다.
양제츠 당시 외교부장은 “중국은 작금의 상황을 매우 주시하고 있으며 책임 있는 대국으로서 사태 그 자체의 시비곡직에 따라 입장을 결정하고, 어느 편도 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후 10년 넘게 한반도 상황과 관련해선 좀처럼 나오지 않던 이 표현은 작년 6월 다시 등장한다.
당시 주중 한국대사관 고위 관계자는 “중국 측은 북한의 정당한 안보 우려만을 중시할 것이 아니라 북한 핵·미사일 도발에 직면한 한국의 정당한 안보 우려도 고려해야 한다”는 비판을 제기했다.
그러자 중국은 “한반도 문제에서 중국은 시종 사안의 시비곡직에 따라 입장을 결정하고, 각 당사자의 합리적 우려의 균형 잡힌 해결을 주장했다”며 “어느 한쪽의 우려만 중시하는 문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내놨다.
2010년과 작년 언급을 글자 그대로 해석하면 북한만을 편들지 않는다는 의미가 된다.
1년 뒤인 올해 북러 정상회담 당일에는 이 표현에 ‘스스로의 방식으로’라는 말도 더해졌다.
문일현 중국정법대 교수는 “중국이 한국이나 미국을 향해 시비곡직을 따지지 않은 때는 없었다”며 “한반도 문제에서 ‘시비곡직에 근거해’ 자기 입장을 결정하고 ‘스스로의 방식으로’ 역할을 하겠다는 지난달 언급은 중국 입장에서 북한을 향한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풀이된다”는 견해를 밝혔다.
문 교수는 “미중 경쟁 속에 한반도의 현상유지와 안정적 관리가 목표인 중국 입장에선 북한의 대결 행동으로 긴장이 높아지면 자국의 전략적 행동에 차질을 빚게 된다”며 “결국 중국은 북러가 합의를 한다고 해도 꼭 동의하지는 않겠다는 점을 분명히 한 셈”이라고 설명했다.
북한과 중국은 수교 75년 동안 시기별로 밀착하기도, 소원해지기도 했다.
1960년대에는 소련에 대한 입장차와 중국 문화대혁명 등 혼란한 상황이 겹치며 수년간 정상급 교류가 중단됐다.
1980년대엔 중국의 개혁·개방과 북한의 김정일 후계체제 공식화 속에 한껏 긴밀한 관계가 된 바 있다. 1992년 한중 수교의 충격은 한동안 북중 관계를 경색시켰다.
양국이 소련(러시아)과 관계가 틀어질 때면 서로 지지·밀착하는 상황은 반복되는 패턴이었다.
이 때문에 최근 북중 사이에 관측되는 ‘미묘한’ 관계 변화가 장기적·근본적 전환까지는 아니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이어질 가능성은 있다는 관측도 제기된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북중 관계 전문가는 “중국과 소련이 경쟁적으로 북한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고 해 북한이 전략적 가치를 높였던 냉전 후반기와 미중 전략 경쟁으로 갈 길이 바쁜 중국이 ‘한미일 대 북중러’ 구도에 거부감을 보이는 듯한 지금 상황이 같지는 않다”며 “중국으로선 북한도 중요하지만, 한국·미국 등과의 관계도 신경 쓸 수밖에 없어 고민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이런 가운데도 올해 북중 교역은 코로나 이전 수준에 육박하며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중국 해관총서(관세청) 데이터를 보면 올해 1∼5월 중국의 대북 수출은 총 6억8천800만달러(약 9천495억원), 수입은 총 1억5천200만달러(약 2천98억원) 규모로 나타났다.
지난 2019년 1∼5월 중국의 대북 수출은 9억3천200만(약 1조2천862억원), 수입은 9천400만달러(약 1천297억원) 규모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