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에 면역력 떨어져
여름철에 많이 발생
가정주부 B(52)씨는 최근 갑자기 허리에 칼이나 바늘로 계속 찌르는 듯한 참기 어려운 통증을 느껴 정형외과를 찾았다. 일전에 앓았던 허리 디스크가 재발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약 처방을 받아 먹었지만 통증은 사라지지 않았고 통증 완화를 위해 붙였던 파스 자리에 오히려 물집이 생겼다. 갈수록 허리를 넘어 배까지 띠 모양 물집이 생기기 시작했다. B씨는 대학병원 피부과를 찾아 ‘대상포진(herpes zoster)’ 진단을 받았다.
김도영 세브란스병원 피부과 교수는 “대상포진은 50대 이상에서 주로 발생했지만 최근 과로나 심한 스트레스 등으로 인해 40대 이하 젊은 층에서도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고 했다.
대상포진은 본래 계절과 관계없이 발생하는 질환이다. 하지만 최근 무더위에 냉방으로 인한 실내외 온도차와 피로 누적, 체력 저하 등으로 면역력이 떨어져 여름철에 많이 걸리고 있다. 이 때문에 ‘여름철 복병’이라고 불린다.
■면역력 떨어지는 50대 많이 발생
대상포진은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가 면역체계·항바이러스제의 위세에 눌려 몸속 신경절에 숨어 지내다 면역력이 떨어지면 활성화돼 발생한다.
수두에 걸렸던 사람 누구나 발병 대상자다. 10세 이상 청소년·성인 1,19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 항체 보유율은 연령에 따라 늘어난다. 50세 이상 환자의 수두-대상포진 바이러스 항체 보유율은 94.5~100%였다.
대상포진에 걸리면 대개 척추에서 좌우로 갈라지는 신경의 한쪽을 타고 띠 모양의 작은 종기가 났다가 물집이 생긴다. 신경에 염증이 생기고 손상되는 과정에서 통증 유발 물질이 다량 분비돼 통증이 생긴다.
전신 권태감, 발열, 오한, 복통, 속 쓰림, 설사 등이 생기기도 한다. 심한 통증이 먼저 생기고 피부 발진이 3~10일 후 나타난다. 발진이 나중에 생기므로 신경통, 디스크, 오십견, 요로결석, 늑막염 등으로 여기곤 한다.
통증이 생긴 뒤 4주가량 치료하지 않으면 만성 신경통에 시달리게 된다. 따라서 피부 발진과 신경통이 나타난다면 피부병이라 생각하지 말고 대상포진을 의심할 필요가 있다.
■환자 20%, ‘대상포진 후 신경통’
대상포진이 발생한 부위에 따라 뇌수막염·녹내장·시력 저하·안면마비·청력 손실·근력 저하 같은 합병증도 발생할 수 있다. 대상포진으로 인해 뇌졸중 발병 위험은 4배, 치매 발생률도 3배나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골반에 생기면 방광 신경이 손상돼 소변 배출이 힘들어진다.
적절한 치료를 하면 통증은 피부 병변이 생긴 지 1~2개월 뒤에 사라지지만 3~4개월이 지나도 통증이 계속될 때도 있다. 신경 손상과 지속적인 통증 신호 자극에 의해 통증 전달 체계에 이상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를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라고 한다.
이중선 을지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몸이 허약하면 ‘대상포진 후 신경통’이라는 통증이 계속된다”며 “환자 가운데 20% 정도가 이를 겪는다”고 했다. 대상포진은 일찍 치료할수록 예후(치료 경과)가 좋다. 발병 후 72시간 이내 항바이러스 치료를 시작해야 한다.
대상포진을 예방하려면 체내 면역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과음, 과식, 과로를 피한다. 예방을 위해 평소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사, 충분한 휴식이 중요하다.
[미주 한국일보 권대익 의학전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