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N, 유럽의회 선거 이어 총선 1위 예측…의회 1당 되면 총리 배출

마크롱의 집권 여당 참패 전망…역대 4번째 동거 정부 구성될 듯

프랑스 조기 총선의 1차 투표 결과 이변은 없었다.

극우 국민연합(RN)이 득표율 1위를 기록할 것이란 출구조사 결과가 나오면서 다시 한번 극우 돌풍이 입증됐다.

RN은 이 기세를 몰아 2차 투표에서 절대 과반 의석을 확보해 총리를 배출, 직접 정부 운영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극우 정당이 프랑스 의회 다수당을 차지해 집권까지 하는 건 전례 없는 일이다.

전격적인 의회 해산과 조기 총선을 결정하며 승부수를 던졌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은 선거 결과 참패가 예상돼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됐다.

◇ 극우 1당 현실화하나…프랑스사 전례 없어

이날 1차 투표 이후 발표된 각종 출구조사 결과를 보면 RN은 좌파 정당들이 뭉친 신민중전선(NFP), 마크롱 대통령의 집권 여당 르네상스를 중심으로 한 범여권 앙상블에 앞서 넉넉한 1위를 차지했다.

여론조사기관인 엘라베의 출구조사 결과 RN은 33%의 득표율로 전체 의석 577석 가운데 260∼310석을 차지할 것으로 예상됐다.

IFOP의 출구조사 결과에서도 RN은 34.2%를 얻어 240∼270석을 차지할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입소스도 RN이 34%를 득표하는 걸로 예측했다. 

2022년 총선에서 RN은 89석을 얻었다. 

이날 투표 결과는 지난 9일 유럽의회 선거 결과에서 드러난 극우 세력의 약진이 예외적 상황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당시 RN은 31.5%를 득표해 여당 르네상스(14.6%)를 압도적인 표 차로 눌렀다.

RN의 지지세 확산은 프랑스 내 이민자 급증이 초래한 사회 불안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이어진 고물가 등 사회·경제적 불안이 표심에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RN은 이번 선거 운동 과정에서 의회 다수당을 차지해 총리를 배출하게 될 경우 이민 및 국경 통제 문제를 최우선 과제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외국인 무슬림 범죄자의 추방을 용이하게 하고 속지주의를 폐지하며 불법 이민자에 대한 국가 의료 지원도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아울러 서민의 구매력 증대를 위해 에너지 부가가치세 인하, 기본 생필품 부가가치세 폐지 등의 공약도 내놨다. 

마크롱 대통령이 밀어붙인 정년 연장도 62세로 환원하겠다고 강조했으며, 역시 마크롱 정부의 친유럽연합(EU) 정책 기조에서 벗어나 프랑스 주권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이런 RN의 공약들에 전통적 극우 지지층 외에 여성, 청년층 일부의 마음이 움직인 것으로 분석됐다.

RN의 높은 지지율엔 좌파 연합 NFP가 집권할 수 있다는 경각심도 한몫했다.

과거 반유대주의 정당 이미지를 안고 있던 RN은 이번 선거 과정에선 NFP의 일부인 극좌 정당 굴복하지않는프랑스(LFI)가 반유대주의를 부추긴다고 공격했다. LFI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 전쟁에서 친하마스 성향을 보여왔다. 

이에 그동안 RN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온 유대인들 사이에서도 RN을 지지하겠다는 기류가 감지됐다.

NFP의 부자 증세나 기업의 초과 이윤 과세 공약에 놀란 경제계에서도 RN 지지로 방향을 틀었다.

1차 투표 결과에 고무된 RN은 2차 투표에서 절대다수 의석을 확보해 조르당 바르델라 대표를 총리로 앉히겠다는 각오다.

이날 1차 투표에서 바로 당선된 마린 르펜 의원은 투표 종료 후 기자회견에서 “아직 승리가 아니다. 2차 투표가 결정적”이라며 “폭력적인 극좌 정당 손에 프랑스가 넘어가는 걸 막아달라”고 호소했다.

바르델라 대표 역시 “프랑스에는 두 가지 길이 열려 있다. 파멸로 이어질 최악의 동맹이냐, 아니면 안보를 회복하고 일자리를 지킬 국민연합이냐”라며 “2차 투표는 5공화국 역사상 가장 결정적인 선거 중 하나가 될 것”이라고 반 NFP 전선 구축을 촉구했다.

◇ 극우 기세 꺾으려던 마크롱, 자승자박 위기

이날 출구조사 결과대로라면 마크롱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출구조사 결과에 따르면 범여권은 90∼120석 또는 60∼90석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2022년 총선에서 245석을 얻은 것에 비하면 반토막에도 못미친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9일 유럽의회 선거에서 RN이 압승하자 의회를 전격 해산하고 조기 총선 소집령을 발표했다.

RN의 지지세를 지금 꺾지 않으면 2027년 대선에서 극우가 대권을 쥘 수 있다는 위기감에 던진 승부수였다.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 12일 대국민 기자회견에서 “나는 2027년에 극우에게 권력의 열쇠를 내주고 싶지 않다”며 솔직하게 속내를 털어놨다.

총선에서 RN이 다수당을 차지해 총리를 배출한 뒤 수권 능력을 증명하지 못하면 2027년 대선을 넘보긴 어려울 거라는 판단도 깔렸다.

앞서 두 차례 RN의 마린 르펜 후보와 대선에서 맞붙었을 때 ‘극우만은 안 된다’며 자신에게 힘을 실어준 유권자들이 이번에도 극우 집권 현실화에 맞서 ‘현명한’ 선택을 할 것이라는 기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유권자들은 이번엔 마크롱 대통령의 손을 잡지 않았다.

마크롱 대통령의 실패는 어느 정도 예견됐다.

그는 재임 이후 여론의 강한 반대에도 지난해 초 연금 개혁을 밀어붙였다. 

지난해 말엔 좌파 진영에서 ‘극우 공약’이라고 비판한 이민법 개정을 추진해 거센 비판을 받았다. 

올해 초엔 정부의 각종 규제에 반발한 농민들이 들고일어났다. 

고물가 상황에 임금은 제자리걸음이니 서민들 내에선 ‘정부는 도대체 뭘 하고 있는거냐’는 불만이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총선 결정은 여기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 

파리정치대학의 정치커뮤니케이션 필립 모로 쉐보레 교수는 최근 RMC 라디오에 “지금 벌어지는 일들을 초래한 장본인이 대통령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아무도 그의 말을 듣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진단했다.

마크롱 대통령의 조기 총선 결정은 결과적으로 얻은 것 없이 RN의 힘만 키워준 셈이 됐다.

2차 투표에서도 극우의 기세가 이어진다면 RN은 다수당으로서 총리를 배출할 수 있다.

프랑스에서 총리는 대통령이 임명하지만, 의회가 언제든지 내각 불신임을 표결할 수 있어 관례상 의회 다수당 출신 인물을 총리로 임명해 왔다.

RN 출신의 총리가 임명되면 프랑스 5공화국 역대 4번째 동거 정부가 들어서게 된다.

대통령과 총리의 소속 정당이 다른 만큼 정책 노선과 방향의 차이로 인해 마크롱 대통령이 임기 내에 추진하려던 각종 개혁 정책은 무산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다.

향후 당내 분열과 마크롱 대통령의 지도력 상실도 불가피해 보인다.

가브리엘 아탈 총리나 장관들은 마크롱 대통령의 의회 해산 및 조기 총선 결정을 ‘통보’ 받았다. 

총선에서 다수당 지위를 잃으면 총리나 장관은 전부 교체 대상인데도 마크롱 대통령은 이들과 사전에 상의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일부 각료는 대놓고 불만을 표시하진 않았으나 “대통령 한 명의 판단”이라는 말로 우회적으로 유감을 표했다.

총선 결과 지역구 자리를 잃게 된 의원들도 마크롱 대통령에게 등을 돌릴 가능성이 크다.

최악의 상황을 피하기 위해 마크롱 대통령은 이날 “2차 투표에서 RN에 맞서 광범위하고 분명한 민주적·공화적 결집이 필요한 때가 왔다”며 다시 한번 유권자들에게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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