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보증·다운페이 보조’ 지원 필요
‘가난 대물림 심화될 것’ 우려도 고조
부모의 도움을 받아 생애 첫 주택 구입에 나서는 젊은 세대가 늘고 있다. 주택 매물 부족과 주택 가격 급등세로 인해 주택 구입 여건은 그 어느때보다 나쁜 상황이다. 자신의 힘으로 내 집 마련에 성공할 젊은 세대가 많지 않아 내키지 않아도 부모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가 부모의 도움으로 생애 첫 주택 구입에 나서는 젊은 층의 추세를 살펴봤다.
◇ ‘대출 보증·다운페이 보조’
국영모기지보증기관 프레디맥의 분석에 의하면 55세 이상 모기지 대출 공동 서명자를 통해 주택을 구입한 35세 미만 바이어 비율은 1994년 1.6%에서 2022년 3.7%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55세 이상 대출 공동 서명자는 대부분 부모로 대출에 보증을 서는 형식으로 자녀의 주택 구입을 돕는다. 부동산 업체 레드핀의 조사에서도 올해 55세 이상 대출 공동 서명자 비율은 지난해보다 더 높아질 것으로 전망됐다.
부모가 자녀의 주택 구입을 돕는 방법은 모기지 대출 보증뿐만이 아니다. 주택 구입에 반드시 필요한 다운페이먼트 등의 재정을 지원하는 부모도 증가세다. ‘전국부동산중개인협회’(NAR)의 조사에 따르면 올해 4월 기준 20, 30, 40대 초반 주택 구입자 중 부모나 친구로부터 재정 지원을 받은 비율은 12%로 작년(9%)보다 높아졌다. 이 비율은 최근 5년간 하락했다가 올해 다시 상승세로 돌아선 것이다.
부모가 자녀의 주택 구입을 돕는 이유도 단순히 집을 사주기 위한 것만은 아니다.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일부 부모는 기존 보유 주택을 담보로 대출받아 자녀의 주택 구입을 적극적으로 돕는 경우도 있다. 이들 부모는 집을 사서 자녀에게 넘겨주기 위한 목적 외에도 장기적인 가족 투자를 염두에 두고 공동 구매 방식으로 자녀의 주택 구입을 전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 부모 도움 없이는 불가능
신시내티에서 투잡을 뛰는 이브 브라운은 최근 어머니로부터 현금 1만 6,000달러를 지원받아 생애 첫 주택 구입의 기쁨을 누렸다. 투잡을 뛰어도 주택 구입에 필요한 모기지 대출금 9만 2,000달러를 받는데 소득이 부족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어머니한테 손을 벌렸다. 전직 회계사인 브라운의 어머니는 딸의 다운페이먼트 지원뿐만 아니라 모기지 대출에도 공동 서명하며 딸의 주택 구입을 적극 도왔다. “항상 내 집 마련에 대한 소망이 있었지만 부모에게 도움을 받고 싶지 않았다”라는 브라운은 “그러는 사이 집값이 너무 올라 내 능력으로 도저히 집을 살 수 없는 시점에 이르렀다”라며 42세에 첫 주택을 구입을 도운 어머니께 감사했다.
주택 시장은 ‘연방준비제도’(Fed)가 약 2년 전 기준 금리를 급격히 올리기 시작했을 때 잠시 둔화세를 보인 바 있다. Fed의 기준 금리 인상 여파로 모기지 이자율은 당시 사상 최저 수준인 2.6%대에서 7%를 넘어 주택 구입 여건 악화의 주원인으로 지목됐다. 이자율이 7%를 넘어선 것은 현재 젊은 세대의 부모 세대가 첫 주택을 장만하던 20년 전이다.
팬데믹 기간 모기지 이자율과 함께 주택 가격도 덩달아 뛰었다. 극심한 매물 부족 탓에 전국 주택 중간 가격은 사상 최고치에 근접한 42만 800달러대로 올랐다. 고이자율, 고주택가로 악화된 주택 구입 여건은 당분간 개선되기 쉽지 않을 전망이다. 투자 은행 골드만삭스는 올해 주택 가격이 작년보다 약 4.3% 상승해 주택 시장에 큰 부담을 줄 것이라는 전망을 최근 내놓았다.
◇ 자녀 미래를 위해서라면
마이애미 박물관에서 가이드로 일하는 호세 마토스(24)는 아예 어머니와 함께 집을 보러 다닌다. 주택 구입 자금을 모으기 위해 아직 부모님 집에서 함께 사는 마토스는 부모와 일종의 ‘계약’(?) 맺었다. 부모가 다운페이먼트 5만 달러를 지원하고 모기지 대출에 공동 서명해 주면 마토스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매달 모기지 페이먼트를 갚아야 한다는 조건이다.
도미니카 공화국 이민자인 어머니 리젯 로드리게즈는 그녀가 43세였던 2014년에 첫 주택 장만에 성공했다. 그때 느낀 강렬한 기쁨과 안정감을 잊을 수 없는 로드리게즈는 아들도 첫 주택 구입을 통해 비슷한 보람을 느끼기 바란다. 올해 61세인 로드리게즈는 “어머니로서 아들의 미래를 위해 무엇이든 도와주고 싶다”라고 아들의 주택 구입을 돕는 이유를 설명했다.
마토스처럼 어릴 적 살던 부모의 집에서 첫 주택을 바로 장만하는 20~30대 비율도 느는 추세다. 여론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젊은 성인 3명 중 1명은 주택 구입 자금 저축을 목적으로 부모의 집에서 거주하는데 이 같은 트렌드는 팬데믹 기간 급증했다. 이처럼 자녀가 재정적으로 독립할 수 있을 때까지 재정 지원을 하는 부모는 점점 늘고 있다.
퓨리서치 센터의 1월 보고서에 따르면 20대~30대 초반 성인 중 약 44%가 지난해 부모로부터 재정적 지원을 받은 적이 있는데 대부분 식료품 구입, 유틸리티 비용 등 생활비 지출이 목적이었다. 주택 비용에 필요한 재정 지원을 받은 젊은 세대도 적지 않았다. 지난해 부모로부터 주택 임대료나 모기지 페이먼트 납부에 필요한 도움을 받은 20대~30대 초반 성인도 5명 중 1명으로 조사됐다.
◇ ‘가난 대물림’ 우려도
가주 카마릴로 스타트업 직원 헤이든 스미스는 부모로부터 도움을 받는 것이 처음에는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팬데믹 기간 부모 집에서 살면서 주택 구입에 필요한 돈을 충분히 모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주택 가격과 모기지 이자율이 갑자기 상승하면서 자신의 주택 구입 능력이 사라졌다고 판단됐다. 스미스는 주택 구입 여건이 갈수록 나빠지고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자 결국 부모의 도움을 받아 작년 여름에 42만 달러짜리 콘도미니엄을 구매했다.
부모 도움을 첫 주택을 마련하는 트렌드로 인해 앞으로 부의 격차가 더 심화할 것으로 우려된다. 부모가 집을 소유한 경우 자녀의 주택 구입 비교적 수월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자산 축적의 기회를 잃어 두 계층 간 소득 격차가 벌어질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미주 한국일보 준 최 객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