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왕절개 분만 시 무통주사와 국소마취제인 ‘페인버스트’를 동시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보건당국이 “현장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며 입장을 사실상 번복했다. 정부가 반대 여론에 밀려 정책을 접은 것은 올해 들어 세 번째다. 설익은 정책 발표를 줄여 현장 혼란을 방지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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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보건복지부 등에 따르면 무통주사와 페인버스트 병용불가 시행을 불과 20여 일 앞두고 정부가 재검토로 돌아섰다. 지난달 3일부터 10일까지 복지부는 ‘요양급여의 적용 기준 및 방법에 관한 세부 사항을 일부 개정한다’고 행정 예고하고 오는 7월 시행한다고 밝혔지만 한 달여 만에 정책을 뒤집은 셈이다. 맘 카페를 중심으로 “저출산 시대라면서 아이를 어떻게 낳으란 말이냐”는 불만이 쏟아지자 결국 백기를 든 것이다. 다만 복지부는 페인버스터의 본인 부담률은 90∼100% 수준으로 높이기로 했다. 본인이 원하면 비급여로 맞을 수 있도록 하겠다는 의미다. 본인 부담률 100%를 적용할 경우 12만∼40만 원 내던 본인 부담금이 3만∼10만 원 인상된다.

정부의 정책 번복은 올 들어 세 번째다. 정부는 지난달 국내안전(KC) 인증이 없는 경우 해외 직구를 금지하는 정책을 발표한 뒤 비판이 쏟아지자 결국 철회한 바 있다. 소비자 선택권을 과도하게 제한하는 규제라는 비난이 쏟아지자 정책 발표 사흘 만에 ‘없던 일’로 한 셈이다. 이후 국토교통부와 경찰청이 ‘2024년 교통사고 사망자 감소 대책’에 “고령자 운전 자격을 제한적으로 관리할 방침”이라는 내용을 담은 뒤 또 한 차례 홍역을 치러야 했다. 고령자 전체를 ‘위험분자’로 매도했다는 노인단체 등의 항의에 경찰청이 뒤늦게 고령운전자를 고위험 운전자로 수정하며 급하게 진화에 나서야 했다.

그때마다 정부는 현장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겠다고 했지만, 이번에도 현장 의견 수렴이 충분치 않았다는 지적이다. 특히 지난 2월 무통주사와 제왕절개까지 비급여로 전환된다는 등의 ‘가짜뉴스’가 SNS를 통해 유포되는 등 심상치 않은 여론동향이 있었지만, 예정대로 시행을 공언했다. 행정예고 전인 4월에는 한 여론조사회사에서 2021년 이후 제왕절개로 출산한 여성 277명을 대상으로 페인버스트 만족도를 조사한 결과 82%가 만족했고 동시 투여 금지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응답이 78%로 나온 바 있다. 이 같은 여론조사 결과라도 수렴했다면 보다 세심한 정책 결정을 내렸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 정책 전문가는 “정부가 특정 정책을 결정하기 전에 이해관계자와 이용자 등으로부터 충분한 의견 수렴을 거쳐야 한다”며 “이 같은 과정이 생략되거나 형식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정책 발표 이후 거센 저항이 생기고 결국 정책을 철회하는 등 행정력 낭비와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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