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약 보름간의 일정으로 미국 출장에 나섰다. 이 회장은 이번 일정에서 미 동부에서 서부에 걸쳐 30여 건의 비즈니스 미팅을 진행하는 강행군을 펼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달 경쟁 업체에 밀려 고전하고 있는 반도체(DS) 부문 수장을 깜짝 교체하며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은 이 회장이 이번에는 해외 현장을 직접 돌며 사업 점검에 나선 것이다.

이 회장은 이번 출장 첫 미팅 이후 현지 임직원들에게 “모두가 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잘해내고 아무도 못 하는 사업은 누구보다 먼저 해내자”고 강조하면서 삼성의 경영 이념인 ‘초일류’ ‘초격차’ 정신을 다시 한번 일깨웠다.

6일 삼성전자에 따르면 이 회장은 지난달 31일 삼성호암상 시상식 직후 출국해 현재 미국에 머무르고 있다. 이 회장은 우선 4일(현지 시간) 뉴욕에서 한스 베스트베리 버라이즌 최고경영자(CEO)와 만나 6세대(6G) 등 차세대 통신 분야와 갤럭시 신제품 판매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번 면담에는 노태문 삼성전자 모바일경험(MX)사업부장(사장)과 김우준 네트워크사업부장(사장), 최경식 북미총괄 사장 등이 배석했다.

전 세계 최대 이동통신사인 버라이즌은 통신 장비, 스마트폰 등을 생산하는 삼성전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파트너사 관계다. 특히 베스트베리 CEO는 2010년 스웨덴 통신 기업인 에릭슨의 회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스페인의 한 모바일 행사에 이 회장과 처음으로 만난 뒤 14년 가까이 각별한 친분 관계를 유지해왔다. 이 같은 신뢰를 바탕으로 양 사는 2020년 약 7조 9000억 원에 이르는 5세대(5G) 포함 네트워크 장비 계약을 체결하기도 했다. 이는 당시 한국 기업의 통신 장비 관련 계약 중 사상 최대 규모다. 통신 장비 시장에서 상대적 후발 주자로 여겨졌던 삼성이 최선단 경쟁에 나설 수 있게 만들어준 마일스톤이 된 계약으로도 볼 수 있다. 이 계약 과정에서 두 사람은 수시로 화상통화를 하면서 계약 조건을 조율했다고 한다.

이 회장과 베스트베리 CEO는 이번 회동에서 인공지능(AI) 기술 활용 방안과 차세대 통신 기술 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특히 7월 공개를 앞둔 갤럭시 Z폴드6 등 플래그십 스마트폰 판매 확대 방안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삼성전자 측은 설명했다. 삼성전자가 올해 초 세계 최초 AI폰을 공개하면서 시장 선점에 성공한 가운데 올 하반기에는 버라이즌 매장 내에서 삼성 최신 스마트폰의 AI 기능을 체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마련하는 등의 방안도 논의됐다.

이 회장은 이번 면담 직후 워싱턴DC로 날아가 미국 정부 및 의회 고위 관계자들과 연쇄 미팅을 진행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서 짓고 있는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공장과 관련해 64억 달러(약 8조 8000억 원) 규모의 보조금을 받을 예정이지만 파운드리 팹에 물량을 줄 고객 확보, 실제 공장을 돌릴 인력 확충 등 다양한 숙제를 안고 있다. 특히 공장 가동 초기에는 상당수의 한국 인력이 미국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아직 비자 문제 등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다.

이 회장은 워싱턴 일정을 마친 후 미국 서부 실리콘밸리로 넘어가 빅테크 CEO들과 연쇄 회동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지난해 5월 일론 머스크 테슬라 CEO와 젠슨 황 엔비디아 CEO 등을 잇달아 만난 바 있다. 특히 삼성전자가 엔비디아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제때 공급할 수 있느냐가 국내 반도체 시장의 최대 관심사로 주목받고 있어 두 사람의 회동 여부에 관심이 쏠릴 것으로 전망된다.

삼성전자의 한 관계자는 “이번 출장은 매일 분 단위로 일정이 쪼개져 있을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일정이 빡빡하다”고 설명했다. 이 회장은 이달 중순까지 미국 출장 스케줄을 마친 뒤 이후 귀국할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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