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룸메이트 살인 사건에 연루된 미국인 여성 어맨다 녹스(36)가 유일하게 유죄로 남아 있는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재심에서도 유죄를 선고받았다.

로이터, AP 통신 등에 따르면 이탈리아 피렌체 법원은 5일 녹스가 무고한 남성을 살인범으로 잘못 지목해 명예를 훼손한 혐의에 대해 유죄를 선고하고 징역 3년 형을 선고했다.

이번 재판은 지난해 10월 이탈리아 대법원이 명예훼손 유죄 판결을 파기하고 재심을 명령한 데 따른 것이다.

이탈리아는 2022년 사법 개혁을 통해 확정판결이 내려진 사건일지라도 인권 침해의 요소가 발견되면 재심을 통해 무고함을 밝힐 수 있도록 했다.

녹스는 사건 초기 경찰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아르바이트했던 페루자의 술집 주인인 콩고 이민자 출신의 패트릭 루뭄바를 살인범으로 지목했지만 이후 이는 경찰의 강요에 따른 것이었다고 말을 바꿨다.

그는 이날 법정에서도 “경찰은 감옥에서 30년을 보내게 될 것이라고 협박했고, 한 경찰관은 ‘기억하라, 기억하라’며 내 뺨을 세 번 때렸다”며 “경찰의 압박을 견딜 만큼 강하지 못해서 매우 죄송하다”고 말했다.

루뭄바는 2주 동안 수감됐다가 알리바이를 증명하고 풀려났다. 루뭄바는 이후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했고 녹스는 앞선 재판에 이어 재심에서도 징역 3년 형을 선고받았다.

녹스의 변호인인 카를로 델라 베도바는 “어맨다는 매우 비통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앞서 녹스는 재판을 앞두고 이번 주 엑스(X·옛 트위터)에 “나에 대한 모든 억울한 혐의를 단번에 벗고 싶다. 행운을 빌어달라”고 썼다.

다만 녹스는 살인 혐의로 이미 4년간 복역해 명예훼손 혐의에 따른 3년의 형기는 이미 채운 상태다.

녹스는 미국 시애틀 태생으로 2007년 11월 이탈리아 중부의 페루자에서 교환학생으로 유학 중, 아파트에 같이 거주하던 영국인 여성 메러디스 커쳐(당시 21세)를 잔혹하게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검찰은 녹스가 커쳐에게 자신의 남자 친구, 아프리카계 이웃집 남성 등과 집단 성관계를 요구했다가 싸움이 벌어져 살인사건이 일어난 것으로 결론지었다.

결백을 주장했던 녹스와 녹스의 당시 남자 친구 라파엘 솔레치토는 나란히 체포돼 1심에서 각각 살인과 성폭행 혐의로 각각 징역 26년형, 25년형을 받았으나 복역 4년째인 2011년에 열린 2심에서 증거 불충분으로 무죄 선고를 받고 석방됐다.

그런데 2013년 대법원이 검찰의 상고를 받아들여 파기환송해 녹스 사건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고등법원은 녹스에게 다시 28년 6개월형을 선고했다. 그러나 2015년 대법원이 이번에는 하급심의 유죄 판결을 모두 기각하고 무죄를 선고했다.

커쳐의 몸에서 DNA가 발견된 이웃집 남성 루이 구데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이 나며 8년여 간의 재판은 녹스의 무죄로 종결됐다.

당시 이 사건은 잔혹한 살해 내용뿐만 아니라 녹스의 청순한 미모, 선정적인 살해 동기 등이 얽혀 이탈리아와 영국, 미국은 물론 전 세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2011년 무죄 석방 이후 미국으로 돌아간 녹스는 거액의 회고록 출판 계약을 맺고 TV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등 일약 유명인으로 떠올랐다.

넷플릭스에서 다큐멘터리를 제작했고, 2021년에는 이 사건을 모티브로 한 영화 ‘스틸워터’가 국내 개봉됐다.

녹스는 살인 혐의는 벗었지만 사건 초기 살인범이라고 지목해 구금됐다 풀려난 술집 주인 루뭄바의 명예훼손 혐의 부분은 여전히 유죄로 남아 있다.

녹스는 자신에게 씌워진 마지막 누명을 벗겠다며 미국에서 이탈리아로 와 이날 법정에서 출석해 무죄를 주장했지만 재심에서도 판결은 바뀌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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