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유럽·중동 등 국제사회, 새 휴전안 지지하며 이·하마스 압박
네타냐후 “하마스 제거가 조건” 입장 고수…이 극우도 ‘연정 이탈’ 경고
WSJ “네타냐후vs신와르, 전쟁 목표·정치적 입장 달라…장기전 가능성”
이, 라파 공습 재개…중재국은 ‘국경 재개방’ 논의
=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새로운 가자전쟁 휴전안을 전격적으로 발표하면서 국제 사회는 9개월째로 치닫는 가자 전쟁을 끝낼 출구를 찾으려 긴박하게 움직였다.
이스라엘의 공습과 봉쇄로 민간인 사상자가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휴전 협상의 불씨를 살리려는 미국과 이집트, 카타르 등 중재국 움직임도 급물살을 타고 있다.
하지만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는 극우 연정의 압박 속에 “하마스 제거가 조건”이라는 입장을 고수했고, 하마스 지도부의 셈법 또한 최대한 시간을 끌겠다는 기류인 것으로 포착되면서 이미 잿더미인 가자 최남단 라파에는 또다시 포화가 덮쳤다.
◇ 바이든이 띄운 휴전안에 국제사회 ‘지지’ 표명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긴급 회견을 열어 3단계로 구성된 새로운 휴전안을 발표하면서 하마스에 수용을 압박했다.
미 의회는 새 휴전안에 정파를 떠나 초당적 지지를 보내는 상황이다. 미 대선을 5개월여 앞두고 공화당에서조차 긍정적인 반응이 나온다.
국제사회 역시 휴전안을 지지하고 나섰다.
CNN 방송과 AFP 통신 등에 따르면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최근의 진전이 지속적 평화를 위한 당사자들의 합의로 이어질 것을 강력히 희망한다”고 말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은 요르단, 사우디아라비아 등에 전화를 걸어 휴전안 수용 압박을 요청했고, 사우디는 “즉각적 휴전과 이스라엘군의 철수를 위한 모든 노력을 지지한다”고 강조했다.
이스라엘 내부에서도 휴전안 수용 촉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이날 수도인 텔아비브의 민주주의 광장은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향해 휴전안 수용 및 즉각 퇴임을 요구하는 시위대로 넘쳐났으며, 다른 이스라엘 전역의 도시에서도 반정부 시위대가 거리로 쏟아졌다고 CNN은 전했다.
◇ “네타냐후-신와르 정치적 우선순위 달라 전쟁 장기화 가능성”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전쟁 종식을 강하게 압박하는 형국이지만, 문제는 전쟁 당사자인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태도다.
미 일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일(현지시간) ‘바이든의 휴전 압박이 힘든 장애물에 직면한 이유’ 제하 기사에서 “바이든 대통령이 전쟁을 종식시키기 위해 지금까지 가장 큰 노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장애물이 엄청나게 높다”고 짚었다.
네타냐후 총리와 하마스 지도자인 야히야 신와르의 정치적 우선순위가 서로 달라 전쟁이 장기화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우선 네타냐후 총리는 전쟁을 멈출 수 없는 정치적 여건에 처해 있다는 분석이 많다.
120석인 이스라엘 의회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극우 정당들과 꾸린 연립정부 의석은 겨우 64석뿐이다. 단 4명만 이탈해도 실각 위험이 있어 연정 내 극우 인사들이 요구하는 ‘완전한 승리’에서 벗어나는 선택을 하기 힘든 상황인 셈이다.
이번 전쟁 발발 원인이 된 지난해 10월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타격으로 1천200여명이 숨지면서 이스라엘 극우 정파는 가자지구에서 하마스를 궤멸시켜 안보 위협 요인을 없애는 게 ‘완전한 승리’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당장 대표적인 극우 인사인 이타마르 벤-그비르 국가안보장관은 이날 하마스를 제거하지 않고서 전쟁을 끝내는 협상을 체결하면 연정을 무너뜨리겠다고 경고했다고 로이터 통신이 전했다.
그는 소셜미디어에 “이런 협상은 어리석은 일이며, 테러의 승리이자 국가 안보에 위협이 될 것”이라고 적었다.
이스라엘 총리실이 이날 성명에서 네타냐후 총리가 자국 협상단에 휴전안 제시를 승인했다고 확인했지만, 네타냐후 총리가 추가 성명에서 기존 입장을 되풀이한 것도 이런 정치적 상황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는 성명에서 “하마스의 군사와 통치 역량 제거, 모든 인질의 석방, 가자지구가 더는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 등 전쟁 종식을 위한 이스라엘의 조건은 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하마스도 바이든 대통령의 새 휴전안 발표 직후 “긍정적으로 본다”며 휴전 및 인질 석방 계획에 대해 “건설적으로 대응하겠다”고 밝힌 바 있지만, 신와르의 속내는 이와 다르다고 WSJ는 분석했다.
WSJ은 가자지구 땅굴에 은신해 있는 신와르와 접촉한 이들을 인용, 하마스의 가자지구 군사·정치적 통제가 유지되고 팔레스타인이 국가로 인정받는 과정에서 하마스가 주도권을 잡게 된다면 신와르가 휴전안을 지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신와르는 또한 시간은 자신의 편이며, 이스라엘은 점점 더 깊은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고 믿고 있다. 그는 특히 메모에 가자지구의 민간인 참상이 이스라엘이 국제적으로 따돌림을 받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고 적기도 했다.
수개월간 휴전 협상에 관여해온 중동 국가의 한 중재자는 WSJ에 “신와르는 정치권의 다른 많은 사람보다 더 큰 이득을 노리고 있다”며 “신와르는 이 접근법(휴전안)을 택하기에는 너무 이르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이스라엘은 바이든 대통령의 새 휴전안 발표가 나온 지 몇시간 후인 1일 하마스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가자 남부도시 라파에 대한 대대적인 공격을 감행했다.
AFP 통신은 라파 주민들을 인용해 라파 서부의 탈 알-술탄 지역에서 탱크 사격이 있었으며, 도시 동쪽과 중심부에서도 집중 포격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한 주민은 “이른 밤부터 오늘 아침까지 공습과 포격이 단 한 순간도 멈추지 않았다”고 말했다.
라파뿐 아니라 가자지구 북쪽에서도 이스라엘은 공격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지구 북부의 자발리아 마을에서 3주간의 작전을 수행한 뒤 인근 베이트 하눈 주민들에게 공격이 임박했다면서 대피 명령을 내렸다고 AFP 통신은 전했다.
유엔은 이스라엘이 가자지구와 이집트의 국경인 라파 검문소를 장악하고 대규모 군사작전을 지속하는 동안 인도적 지원이 끊겼다고 우려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유엔 세계식량계획(WFP) 관계자는 지난달 31일 브리핑에서 5월 초 이스라엘의 군사작전이 시작된 이후 라파에 식량 및 기타 지원이 급격히 감소했으며, 남부 국경을 통한 공급이 대부분 중단됐다고 밝혔다.
이 관계자는 “가자지구의 가장 취약한 주민들은 지속적인 이주와 굶주림, 트라우마, 다음에 일어날 일에 대한 절대적 공포로 인해 지칠 대로 지쳐 있다”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이집트와 미국, 이스라엘은 2일 카이로에서 라파 국경검문소 재개방과 관련한 논의를 진행한다. 이 검문소는 이스라엘의 장악 이후 폐쇄된 상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