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의 이혼 항소심 선고 결과를 놓고 SK그룹을 비롯한 재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다.

대법원 확정판결이 남기는 했으나, 2심 판결대로 1조3천808억원의 천문학적인 금액을 재산 분할하게 될 경우 재계 2위인 SK그룹의 지배구조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 2심 판결 확정시 자금 마련 어떻게

2일(이하 한국시간) 재계에 따르면 이번 판결에서 가장 주목받는 부분은 재판부가 1심과 달리 주식도 분할 대상으로 보고 1조3천808억원이라는 역대 최고액을 지급하라고 결정한 점과 고(故)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300억원이 SK그룹에 유입되고 그룹 성장에 노 전 대통령의 역할이 있었다고 명시한 점이다.

재판부가 산정한 두 사람의 보유 재산은 약 4조원이다. 여기에는 최 회장이 2018년 취임 20주년을 맞아 친족들에게 증여한 지분까지 모두 포함됐다.

문제는 최 회장이 주식 외에 다른 형태로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2천억∼3천억원 수준으로, 자산 대부분이 그룹 지배구조 정점에 있는 SK㈜ 지분이라는 점이다.

2심 판결이 확정될 경우 지분 매각이 불가피한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SK㈜는 그룹의 주력 계열사인 SK텔레콤(30.57%), SK이노베이션(36.22%), SK스퀘어(30.55%), SKC(40.6%)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최 회장은 SK㈜ 지분 17.73%를 보유한 최대주주로, SK㈜를 통해 다른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지난달 31일 기준 SK㈜의 시가총액은 12조8천975억원으로, 최 회장의 지분 가치는 2조2천867억원이다.

그간 주주가치 제고 노력에도 좀처럼 반등하지 못하던 SK㈜ 주가는 항소심 판결 당일 9.26% 급등한 데 이어 31일에는 11.45% 급등했다. 이틀 동안에만 시가총액이 무려 2조3천억원가량 불어났다.

다만 현재 그룹 지배구조를 고려하면 SK㈜ 지분 매각 가능성은 작다는 것이 재계 안팎의 관측이다.

이에 따라 일단 보유 현금과 부동산 매각 등으로 자금 일부를 충당하고, 나머지는 비상장사인 SK실트론의 지분 매각, 주식담보 대출 등으로 메꿀 것으로 예측된다.

최 회장은 총수익스와프(TRS) 형태로 SK실트론 지분 29.4%를 쥐고 있다. 최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가치는 현재 1조원 안팎으로 추정된다.

하지만 지분 매도 금액이 모두 최 회장의 손에 돌아가지 않는 구조인 데다, 급매로 내놓으면 제값을 받기 어렵고 양도소득세를 내야 하는 점 등도 부담이다.

주식담보 대출도 거론되는 방법 중 하나다. 최 회장은 지난 4월 12일 기준으로 SK㈜ 주식을 담보로 총 4천895억원을 대출받은 상태다. 따라서 주식담보 대출로 자금을 확보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연 5%의 재산분할 지연이자도 부담이다.

다만 최 회장 측이 대법원 상고 의사를 밝힌 만큼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2∼3년이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최 회장의 입장에서는 일단 재산분할 금액을 마련할 시간을 벌게 된 셈이다.

재계에서는 최근 사촌 동생인 최창원 SK수펙스추구협의회 의장의 주도로 진행 중인 그룹 사업 재편과 맞물려 지분 정리 등이 이뤄지지 않겠냐는 분석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SK실트론 지분 매각과 주식담보 대출 등으로는 한계가 있는 만큼 결국 최 의장 주도의 사업 재편과 연계가 불가피하지 않겠느냐”며 “경영권 방어를 위해 최 회장의 지분 정리가 그룹 재편과 맞물려 추진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SK그룹은 이달 25일 전후로 열릴 예정인 확대경영회의에서 그룹 ‘리밸런싱’ 사업을 점검할 예정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로 SK그룹의 사업 재편 시 따져봐야 할 변수가 늘어난 만큼 재편 속도가 다소 늦춰질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온다.

◇ 재판부, ‘정경유착’ 사실상 인정…이미지 훼손 불가피

다만 SK그룹에서는 “총수 개인의 일”이라고 선을 그으며 그룹 내 사업 추진 등에는 별다른 영향이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최 회장도 이달로 예정된 SK그룹 확대경영회의와 해외 출장 등의 일정을 예정대로 수행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재판부가 ‘정경유착’을 사실상 인정하면서 그동안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경영을 강조해 온 SK그룹 입장에서는 이미지 훼손이 불가피해진 상태다.

그간 재계 안팎에서 정유와 섬유 부문으로 출발한 선경그룹(SK그룹의 전신)이 한 단계 도약한 계기가 제2이동통신 사업 진출이고, 여기에는 최 회장과 노 관장의 1988년 결혼 이후 노 전 대통령의 역할이 주효했다는 시각이 존재했는데 이 부분이 재판부에 의해 기정사실화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판결로 ‘재계 맏형’으로 대한상의 회장을 맡고 있는 최 회장의 향후 대외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재계에서는 특히 노 전 대통령이 SK그룹에 있어 일종의 보호막 역할을 한 것이라는 재판부의 판단에 대해서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는 모습이다.

재계 관계자는 “어음 사진과 메모만 가지고 비자금이 유입됐다고 보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설사 비자금이 유입됐다고 해도 불법으로 조성된 자금으로 그룹 성장에 기여한 부분을 인정하는 것이 맞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정농단 사태 이후 정경유착에 대한 거센 비판 여론이 일면서 타격을 입은 재계 전반에 또다시 부정적인 이미지가 덧대질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재판부가 SK그룹이 ‘혼맥’으로 성장했고 노 전 대통령의 후광에 힘입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대기업에 관한 이미지가 전반적으로 훼손됐다”고 말했다.

다른 재계 관계자는 “대기업과 정부의 ‘정경유착’ 이미지가 굳어지면 정부 입장에서도 기업 편을 들어주기가 부담스러워질 수 있다”며 “여러 규제 완화가 절실한 데 이를 추진하기 어려워질 수도 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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