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미국의 대중국 제재에 맞서 사상 최대인 64조 원 규모의 반도체 육성 국책 펀드를 조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독자적인 공급망을 구축해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의 포위망에 대응한다는 방침이다.

27일 니혼게이자이신문과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중국 국가 집적회로산업투자펀드(ICF), 일명 ‘빅펀드’의 3차 펀드가 이달 24일 설립된 것으로 확인됐다. 자본금은 3440억 위안(약 64조 7000억 원)이다. ICF는 1차 1400억 위안, 2차 2000억 위안으로 이번 3차 조성액은 역대 최대 규모다.

최대주주는 중국 재무부로 17%를 출자했으며 국가개발은행 자회사가 10%, 상하이시 정부 산하 투자회사가 9% 등 국유기업, 공상은행 등 국영은행 등이 다수 출연했다.

미국과 중국의 ‘총성 없는 반도체 전쟁’은 점입가경으로 치닫고 있다. 미국이 반도체법을 통해 약 72조 원 규모의 지원에 나서기로 하자 중국도 3차 펀드의 규모를 늘려 기술 자립화에 나서겠다고 맞불을 놓은 셈이다.

세계 각국은 중국의 반도체 굴기를 저지하기 위해 연합 전선을 구축해 대중국 제재에 나서는 한편 자국 반도체 산업 육성에 보조금을 쏟아붓고 있다.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반도체 산업 공급망의 재편을 시도하는 미국은 가장 공격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조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발효한 반도체지원법을 통해 390억 달러의 생산 보조금과 132억 달러의 연구개발(R&D) 지원금 등 5년간 총 527억 달러를 지원하기로 한 상태다. 인텔(85억 달러), 대만 TSMC(66억 달러), 한국 삼성전자(64억 달러) 등에 대한 보조금 지원이 이미 결정됐다. 첨단 반도체 분야의 대중국 수출 통제를 이어온 미국은 이달 14일에는 중국 반도체에 대한 관세를 내년에 25%에서 50%로 인상하겠다고 밝혔다.

중국도 지난 10년 동안 SMIC를 비롯한 중국 내 반도체 업체를 지원하기 위해 국가 자본을 집중 투입하며 적극 대응하고 있다. 이번에 중국이 예상을 뛰어넘는 규모의 3차 펀드 조성에 나서면서 반도체 주도권을 둘러싼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뿐만 아니라 유럽연합(EU)·한국·일본 등도 보조금 지원에 뛰어들며 중국을 반도체 공급망에서 배제시키는 상황에서 중국이 반도체 굴기를 이뤄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당초 2000억~3000억 위안(약 37조 6000억~56조 4000억 원)으로 추정됐던 3차 펀드 조성 규모가 대폭 늘어난 것은 중국 정부가 반도체 패권 경쟁에서 밀리지 않기 위해 본격적인 ‘쩐의 전쟁’에 나섰다는 분석이다. 미국의 강력한 통제로 첨단 반도체 제품은 물론 생산 장비의 구매 경로가 막힌 상태여서 반도체 자립화 없이는 기술 경쟁은 물론 미국과의 세계 패권 전쟁에서 뒤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투자처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미국의 수출 규제로 수입이 어려워진 인공지능(AI)용 반도체나 제조 장치 등이 주된 투자 대상이 될 것이라고 닛케이는 전했다. 수입 규제 대상이 되고 있는 제조 장치의 개발에 더해 국내 조달 전환을 서두르는 실리콘 웨이퍼나 화학품 등의 중국 메이커 육성에도 주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날 21세기경제보도 등 중국 경제 매체 등에 따르면 기존 1·2차 펀드가 설비와 재료 분야에 집중해서 반도체 산업 발전의 기초를 닦았다면 이번 3차 펀드는 고대역폭 메모리(HBM) 등 AI 관련 반도체 분야를 주요 투자 대상으로 삼을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경제와 AI의 발전 추세 속에 관련 반도체의 중요성이 높아진 탓이다. 중국 중항증권은 “적층 패키징이 반도체 산업의 주요 단계가 되는 상황에 중국 반도체 산업이 자체 발전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빨리 보조를 맞춰야 한다”며 “미국이 중점적으로 제재하고 있는 분야가 3차 펀드의 중점 투자 대상이 될 것”이라고 짚었다. 블룸버그는 “미국이 중국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고 기존 수출통제의 구멍을 막도록 촉구하는 가운데 빅펀드 3는 중국이 자체 반도체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새로운 추진력을 보여준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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