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교육협의회(대교협)가 올해 고3 학생들에게 적용할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을 변경·승인하면서 27년 만의 의대 증원이 확정됐다.
지역국립대는 지역 필수의료 거점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서울대보다 큰 규모의 ‘메가 의대’로 재탄생하게 됐고, 정원이 50명 이하였던 소규모 의대들은 정원이 100명 안팎으로 늘어나면서 의대 교육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게 됐다.
하지만 의사단체들이 “증원에 따른 여파는 정부가 책임져야 한다”며 강력하게 반발하는 데다, 현장을 떠난 전공의들도 돌아올 조짐을 보이지 않고 있어 의료계와 정부의 갈등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장기화할 것으로 보인다.
◇ 대교협,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안 ‘만장인치’ 승인
대교협은 24일(이하 한국시간) 서울 중구 콘퍼런스하우스 달개비에서 올해 제2차 대입전형위원회를 열어 전국 39개 의과대학 모집인원을 포함한 2025학년도 대학입학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원안대로 승인했다.
이에 따라 올해 하반기 시작되는 2025학년도 대입에서 의대(의전원 포함) 모집인원은 전년(3천58명) 대비 1천509명 늘어난 40개 대학 4천567명이 된다.
경기도 소재 차의과대의 경우 대입전형 시행계획 제출 의무가 없는 ‘의학전문대학원’이어서 이날 승인에서 제외됐지만, 이미 학교 측이 학칙을 개정해 정원을 40명 늘려 2025학년도부터 모집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회의는 1시간 만에 끝났고, 위원들은 대입전형 시행계획 변경사항을 만장일치로 승인했다.
대입전형위원회 위원장인 오덕성 우송대 총장은 “교육부에서 결정한 정원 조정 계획에 대해서 어떻게 (입학)사정을 시행할지 입학전형 방법에 대해서 논의한 것”이라며 “각 대학에서 올라온 안건에 대해서 전원 찬성하고 동의했다”고 설명했다.
교육의 질 저하 우려에 대한 질문에는 “우리 기능 밖의 일”이라고 선을 그으며, 위원회는 각 대학이 지역인재전형 등 정원에 맞춰 학생들을 뽑기 위해 제시한 세부사항을 심의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남은 절차는 대교협으로부터 시행계획 변경 승인을 통보받은 대학들이 이달 31일까지 수시 모집요강을 공고하는 것이다.
교육부와 대교협은 아직 각 대학이 모집요강을 정식 발표하지 않은 만큼, 의대 입학전형과 관련된 정시·수시모집 비율 등 세부적인 내용은 이달 30일 발표하기로 했다.
◇ 27년 만에 ‘3전4기’ 증원…지방국립대·미니 의대, 최대 수혜
정부가 ‘3전4기’ 끝에 의대 증원에 성공하면서 비수도권 의대와 소규모 의대에 가장 큰 변화가 생길 전망이다.
9개 비수도권 거점 국립대학은 2025학년도에 증원분을 50%만 반영해 뽑을 예정인데 이들 대학의 증원 규모는 405명이다.
특히 ▲ 경북대 155명 ▲ 경상국립대 138명 ▲ 부산대 163명 ▲ 전북대 171명 ▲ 전남대 163명 ▲ 충남대 155명 등 6개 대학은 서울대(정원 135명)보다 모집인원이 많다.
비수도권 거점 국립대를 정부가 집중적으로 증원한 것은 ‘지역의료·필수의료 거점’으로서 역할을 강화해 수도권과 비수도권 간 의료 격차를 해소하겠다는 취지다.
23개 사립대 가운데 정원이 50명 이하였던 14개 소규모 의대도 대폭 증원됐다.
▲ 차의과대(모집인원 80명) ▲ 강원대(91명) ▲ 대구가톨릭대(80명) ▲ 제주대(70명)를 제외하면 모두 모집인원이 100명을 넘어선다.
소규모 의대의 경우 의대 운영에 투입되는 인적·물적 자원에 비해 정원이 지나치게 적어 운영상 비효율적인 측면이 있다는 지적을 고려해 정원이 집중 배정됐다.
이처럼 의대 정원이 늘어난 건 제주대 의대가 신설됐던 1998년이 마지막이다. 당시 의대 정원은 3천300명이었다.
이후 2000년 의약분업 시행으로 병·의원 약 처방이 불가능해지자 정부는 의료계에 수가 인상과 함께 의대 정원 감축을 제안했고, 의대 정원은 2003년 3천253명, 2005년 3천97명, 2006년 3천58명으로 줄어든 뒤 19년간 동결됐다.
2010년 이후 급속한 고령화로 의사가 부족해질 것이라는 연구가 쏟아져 나오자 정부는 의대 증원을 추진했지만 계속 실패했다.
2012년 이명박 정부는 대한의사협회(의협) 등과 의대 증원 논의에 나섰지만, 의료계를 설득하지 못했다.
2018년에는 문재인 정부가 공공의대 신설 계획을 발표했지만, 의료계의 강력한 반발로 관련 법이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이후 2022학년도부터 10년간 총 4천명의 의사 인력을 추가로 양성하는 방안을 내놨지만,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막혀 “코로나 사태가 끝나면 원점에서 재논의하자”는 데 합의해야 했다.
◇ 요원해진 전공의 복귀…학칙 개정·의대생 집단유급 ‘난제’
의협은 이날 증원 확정 발표 직후 입장문을 내고 “의료시스템을 공기와도 같이 당연히 생각하셨을 우리 국민들께서 모든 후폭풍을 감당하셔야 할 것이 참담할 뿐”이라며 “정부의 폭정은 반드시 심판받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의료계는 증원이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의료 현장을 이탈한 전공의들이 복귀할 명분과 계기가 모두 사라졌다고 본다.
‘빅5’ 수련병원의 한 교수는 “의대 증원을 확정해버리면 어떤 전공의가 돌아온다고 하겠느냐”며 “이 상황에서는 교수들도 전공의들에게 돌아오라고 설득하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지난 21일 기준 주요 수련병원 100곳에서 근무 중인 전공의는 658명뿐으로, 전체 전공의 1만3천여명의 5% 남짓이다.
의대 교수들도 전공의 공백이 더 길어질 수 있다고 보고 대응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의대증원 효력 집행정지를 신청한 전국의과대학교수협의회(전의교협)는 대법원에 재항고를 신청하면서 법정 공방을 이어가는 한편, 당분간 정부의 보건의료 및 의학교육 자문 등에 응하지 않기로 했다.
정부 정책 추진을 위한 ‘거수기’ 역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수업을 거부하고 있는 의대생들의 ‘집단유급 마지노선’이 다가오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의대를 운영하는 40개 대학 중 37개 대학이 이미 온·오프라인 수업을 재개했지만, 수업에 참여하는 학생은 많지 않다.
특히 의대생들이 이미 휴학계를 제출한 상황에서 교육부가 “동맹휴학은 휴학 사유가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는데, 이들이 집단유급될 경우 갈등이 법정 다툼으로 번질 수 있어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일부 대학은 의대 증원을 위해 필요한 학칙 개정이 구성원 반발로 부결되면서 진통을 겪고 있다.
경상국립대, 전북대, 경북대, 제주대 등은 내부 심의 과정에서 교수들의 반발로 학칙 개정 안건이 부결됐거나 보류됐는데 의대 증원으로 강의실 부족, 수업 질 하락 등 의대 교육의 부실화가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교육부는 학칙 개정이 이뤄지지 않은 대학에 조속한 개정을 촉구하면서, 개정이 이달 말까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다음 달에는 시정명령을 내린다는 방침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