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세찬 비에 젖은 상태로 연설하는 수낵 총리 [로이터=연합뉴스]

영국 집권 보수당의 리시 수낵 총리가 지지율 열세 속에 취임 2년도 되지 않아 조기 총선을 발표하는 승부수를 던졌다.

지지율이 20%포인트 이상 앞선 제1야당 노동당이 조기 총선을 촉구해온 가운데 나온 깜짝 발표로, 국제 정세 혼란 속 안보 강화와 경제 회복세를 유권자들에게 호소해 판을 흔들려는 것으로 해석된다.

수낵 총리는 22일(현지시간) 다우닝가 10번지 총리 관저 앞에서 세차게 쏟아지는 비를 맞으면서 “미래를 선택할 순간”이라며 7월 4일 총선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그간 10∼11월 총선이 치러질 것으로 예상됐고 수낵 총리가 조기 총선에 대한 노동당의 줄기찬 요구에도 버텨온 터라 깜짝 발표로 받아들여졌다.

수낵 총리가 이날 오후 각료 회의를 소집, 그랜트 섑스 국방부 장관이 발트해 국가 방문을 늦추고 데이비드 캐머런 외무장관도 알바니아에서 예정보다 일찍 돌아오면서 조기 총선이 발표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불이 붙었다.

수낵 총리는 이날 낮 의회에 출석해서도 총선 시기에 대한 질의에 “하반기에 치를 것”이라고만 답했지만, 그로부터 불과 서너 시간 만에 7월 총선 계획을 발표했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수당 관계자들을 인용, 수낵 총리가 제러미 헌트 재무장관과 논의에서 올가을까지 기다리는 게 득이 되지 않는다고 결론 내렸고, 그 배경에는 경제에 관한 희소식이 보수당을 구할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고 전했다.

영국은 지난해 3, 4분기 연속 마이너스 경제 성장률로 기술적 경기침체에 빠졌다가 올해 1분기 플러스로 전환했다.

이날 발표된 4월 소비자 물가 상승률은 2021년 7월 이후 최저인 2.3%로 중앙은행 잉글랜드은행(BOE)의 목표치(2%)에 근접했다.

수낵 총리는 실제 이날 연설에서 “우리가 힘겹게 얻어낸 경제적 안정을 위험에 빠뜨리지 않을 수 있는 건 내가 이끄는 보수당 정부뿐”이라고 말했다.

또한 수낵 총리는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긴장, 이민 증가 등을 거론하며 글로벌 안보 위협이라는 불확실성에 대응할 수 있는 것은 보수당 정부라고도 강조했다.

그는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보호를 여러분께 제공하는 데 전력을 다할 것”이라며 “이제 문제는 여러분이 가족과 나라에 안전한 미래를 위해 누굴 믿느냐”라고 말했다.

수낵 총리는 최근 러시아와 이란, 북한, 중국 등 권위주의 국가의 밀착 속 안보 위협을 강조하면서 2030년까지 국방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5% 수준으로 끌어올리겠다고 밝혔다.

또 이민에 부정적 입장인 보수 유권자들을 겨냥, 인권 침해와 국제법 충돌 논란 속에서도 르완다 난민 이송 정책을 밀어붙여 7월에 첫 항공편을 띄울 계획이다.

다만, 지지율 격차가 두 자릿수에 달하는 상황에서 보수당이 반전 승리를 목표로 하는 게 아니라 인기가 더 하락하기 전에 총선을 치르겠다는 뜻일 수 있다고 블룸버그 통신은 해석했다.

보수당 지지율이 지난해 10월 재정정책 실책으로 49일 만에 단명한 리즈 트러스 정부 이후 20%대로 떨어지면서 여론조사에서 양당의 지지율 격차는 20%포인트 이상 벌어져 있다.

지난 19일 레드필드·윌턴 조사에서는 노동당이 45%, 보수당이 23%였으며 다음으로는 극우 성향의 영국개혁당이 12%, 중도 성향 자유민주당이 10%, 진보 성향 녹색당이 5%였다.

수낵 총리의 이날 연설 중반부터는 인근에서 보수당에 반대하는 운동가가 영국 그룹 디림의 ‘싱스 캔 온리 겟 베터'(Things Can Only Get Better)를 크게 틀어 연설을 방해했다. 토니 블레어의 노동당이 1997년 압승한 총선에서 주제가로 썼던 곡이다.

영국 선거 전문가 존 커티스는 현 추세대로면 보수당이 하원 650석 중 165석을 얻는 데 그쳤던 1997년 총선보다 더 적은 의석을 얻을 수 있다고 예측했다. 당시 선거에서 노동당은 418석을 확보, 정권 교체에 성공했고 토니 블레어가 총리가 됐다.

취임 1년 7개월 된 수낵 총리의 개인적 인기도 높지 않을뿐더러, 보수당이 14년간 집권하는 동안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와 코로나19 팬데믹, 우크라이나 전쟁에 따른 물가 급등 등 혼란기를 거치며 정부 대응에 대한 대중의 불만과 실망감이 쌓인 것으로 분석된다.

수낵 총리는 데이비드 캐머런(2010∼2016), 테리사 메이(2016∼2019), 보리스 존슨(2019∼2022), 리즈 트러스(2022) 총리에 이어 2022년 10월 취임했다. 영국이 지난 8년 새 맞은 다섯 번째 총리였다.

지난 총선은 2019년 12월에 2년 반 만의 조기 총선으로 치러졌다. 당시 총선에서는 보수당이 하원 650석 중 과반인 365석을 확보해 보리스 존슨 총리가 자리를 지켰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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