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링컨, 이스라엘의 사우디의 협상 조건 거부 가능성 시사
美 당국자 “누구도 협상 타결 코 앞에 와 있다고 말 못 해”
미국이 중동 정세 안정을 위해 추진해온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 간 관계 정상화 협상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의 거부로 타결 직전 좌초될 수 있다는 바이든 행정부 내부의 전망이 나왔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AFP 통신 등에 따르면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21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에서 사우디가 관계 정상화 조건으로 내건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공격 중단 및 팔레스타인을 국가로 인정하는 방안을 언급하며 “현재로서는 이스라엘이 그 방안으로 나아갈 의지나 능력이 없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블링컨 장관은 또 “이스라엘이 관계 정상화를 실제로 실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할 준비가 돼 있는지 말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블링컨 장관의 이러한 언급은 네타냐후 총리가 극우 연립정부의 반대로 사우디의 조건을 받아들이지 않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을 비롯한 국제사회의 우려와 만류에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를 궤멸시키겠다며 가자지구 남부 도시 라파에 대한 전면 침공을 고집하는 것은 네타냐후 총리의 정치적 입지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 바 있다.
극우파와 유대인 초정통파 세력을 끌어모아 극우 연립정부를 꾸림으로써 2022년 12월 재집권에 성공한 네타냐후로서는 연정 내 극우 인사들의 반대로 전쟁을 멈출 수 없는 여건에 처해있다는 것이다.
이스라엘 고위 당국자는 이날 블링컨 장관의 언급에 대해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군사 능력을 파괴하고 인질을 석방하는 한편 가자지구가 이스라엘에 위협이 되지 않도록 한다는 전쟁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며 “목표를 이루면 중동 평화를 더욱 촉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를 이루기 위해 바이든 행정부는 미국과 사우디 간의 ‘상호방위조약’ 협상도 함께 추진해왔다.
이슬람 수니파 종주국인 사우디와 이스라엘의 수교를 통해 시아파 맹주인 이란에 대항하는 ‘이스라엘-아랍 연합’을 더욱 공고히 함으로써 중동 정세를 재편하는 구상인 셈이다.
이는 앞서 2020년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때 체결된 이스라엘과 아랍에미리트(UAE), 바레인, 모로코 간의 관계 정상화 협정인 ‘아브라함 협정’을 확대, 강화하는 것이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이런 구상이 실현되면 올해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힘겨운 재선 캠페인에서 재대결 상대인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역전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계기가 될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 고위 관계자는 이날 상호방위조약에 대해 “거의 최종적인 합의에 도달했다”면서도 이스라엘과 사우디의 관계 정상화 협상에 대해서는 “장애물이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당국자도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여기 있는 누구도 (협상 타결이) 코 앞에 와 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미 당국자들은 이처럼 네타냐후 총리가 사우디와의 관계 정상화 협정 타결을 계속 주저할 경우, 바이든 행정부는 외교 패키지의 비공개 세부 사항을 공개함으로써 네타냐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일 수 있다고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