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암은 전 세계적으로 매년 100만명 이상의 신규 환자가 발생하고, 80만명이 사망하는 질환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위암 환자의 60% 이상은 한국, 일본, 중국 등의 동아시아에 집중돼 있다. 모든 암을 통틀어봐도 위암만큼 동서양의 발생률 편차가 큰 암이 없을 정도다.
그 이유를 밝히기 위해 그동안 많은 연구가 이뤄졌지만, 아직 명확하게 규명된 것은 없다.
다만, 전문가들은 유전적인 요인과 비유전적인 요인을 아우르는 위암의 가족력이 한국을 포함한 동아시아에서 위암을 발병률을 높이는 주요 요인일 것으로 추정해왔다.
예컨대 헬리코박터 파일로리 감염과 흡연, 식습관, 사회 경제적 지위와 같은 생활환경 요인이 개인의 유전적 요인에 더해지면서 위암 발병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런 주장에 힘을 싣는 대규모 역학 연구 결과도 공개됐다.
서울대 의대 예방의학교실 강대희 교수가 이끄는 한·중·일 3개국 공동 연구팀은 국제학술지 ‘위암'(Gastric Cancer) 최신호에서 동아시아인 55만508명(일본 33만303명, 중국 16만4천277명, 한국 5만5천928명)을 대상으로 15.6년을 추적 분석한 결과, 위암 가족력이 위암 발생 위험을 크게 높이는 연관성이 확인됐다고 밝혔다.
15년이 넘는 추적 관찰 기간 중 위암 발생 건수는 2천258건, 위암 사망 건수는 5천194건이었다.
연구팀은 전체적으로 위암 가족력을 가진 동아시아인의 위암 발병 위험이 가족력이 없는 사람에 견줘 1.44배 더 높은 것으로 추산했다. 나라별 위험도는 한국이 1.5배로 가장 높았고 이어 일본 1.47배. 중국 1.31배였다.
특히 위암 가족력에 따른 위암 발생 위험도는 55세 미만 연령대가 1.64배로, 55세 이상 연령대의 1.35배보다 더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가족력이 있는 경우 상대적으로 조기에 위암이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같은 조건에서 위암 발생의 성별 위험도는 남성(1.44배)과 여성(여성 1.45배)이 비슷했는데, 남성의 경우 형제 중 위암 가족력이 있을 때의 위암 발생 위험(1.94배)이 아버지가 위암인 경우(1.57배)보다 더 높았다.
이와 달리 여성은 위암 가족력이 어머니에게 있을 때의 위암 발생 위험이 1.82배로, 아버지의 1.75배를 상회했다.
연구팀은 이번 연구 결과로 볼 때 동아시아인이 가족끼리 공유하는 특유의 생활환경 요인이 위암 발생에 관여하는 유전자와 상호 작용함으로써 위암 발생 위험을 더욱 높이는 것으로 추정했다.
예를 들어 위암 발생에 영향을 미치는 식생활 습관이 아들은 형제끼리 더 공유되고, 딸은 어머니를 더 닮는다고 볼 수 있다는 것이다.
가족력이 위암 발생 위험을 높이는 연관성은 국내 연구팀이 ‘미국위장관학저널'(The American Journal of Gastroenterology, 2022년)에 발표한 연구 논문에서도 확인된다.
이대목동병원·한양대병원·강북삼성병원 공동 연구팀이 2013∼2014년 전국에서 위암 검진을 받은 40세 이상 448만3천605명을 대상으로 약 5년에 걸쳐 위암 발병 여부를 추적 분석한 이 연구 결과를 보면, 부모나 형제자매 중 위암 발병 가족력이 있는 사람은 가족력이 없는 사람보다 위암과 위 선종 위험도가 각각 1.48배, 1.44배로 더 높아지는 것으로 추산됐다.
이 연구에서는 형제자매 쪽 가족력(형제자매 중 한 명 이상이 위암)이 있는 사람의 위암 발생 위험이 1.59배로, 부모 쪽 가족력(부모 중 한 명 이상이 위암)이 있는 사람의 1.40배보다 더 높았다.
부모 쪽 가족력과 형제자매 쪽 가족력이 둘 다 있는 경우에는 위암 발생 위험은 2.26배로 치솟았다.
연구 책임자인 강대희 교수는 “동아시아인의 위암 예방을 위해서는 가족력 유무를 자세히 살펴 검진 대상을 차별화하는 맞춤형 예방 전략을 마련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강 교수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위암 발병률과 사망률이 감소했으나 한·중·일 3개국에서는 여전히 가장 흔한 암 중 하나”라며 “우리나라는 40대부터 2년에 한 번 위내시경 검사를 권장하지만, 부모 또는 형제자매 중 위암 가족력이 있다면 위내시경 시점을 앞당기고 검진 주기도 1년에 한 번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