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가 56.5㎝에 이르는 백자 항아리 위로 푸른 빛의 용이 그려져 있다. 그 너머로는 구름이 넘실댄다. 수염과 지느러미, 부리부리한 눈 등을 생생하게 그려 강렬한 느낌을 준다. 고 이건희 삼성 선대 회장이 소장했던 ‘용무늬 청화백자 항아리’가 미국 남부 지역을 대표하는 박물관인 휴스턴박물관에서 현지 관람객과 만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휴스턴박물관의 캐롤라인 와이스 로 전시관 1층에 있는 한국실을 새로 단장해 재개관했다고 20일 밝혔다. 휴스턴박물관은 7만여 점의 소장품을 보유한 미국 남부 최대 규모의 박물관이다. 2019년 기준 연간 관람객 수는 약 125만명으로, 지난 2007년부터 한국실을 운영해왔다.

기존 한국실이 한국의 역사·문화를 두루 다뤘다면, 새로운 공간에서는 조선시대에 집중한다. 약 54평(178.5㎡) 규모 공간에서는 조선시대 의례와 신앙, 생활을 보여주는 각종 도자, 목가구, 연적·벼루, 불상 등 총 33건(35점)의 유물을 소개한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이기조 작가의 달항아리와 조선시대 불상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휴스턴박물관이 소장한 현대 작품과 국립중앙박물관의 유물이 어우러진 지점이다. 조선의 궁궐을 재해석한 미술 작품, 호랑이 다리 모양의 소반 등도 함께 볼 수 있다.

당대 최고 장인이 만든 다양한 종류의 백자도 소개된다. 조선 왕실에서 자손이 태어났을 때 태를 보관하고 기록했던 태 항아리와 태지 접시, 조상에 예를 갖춰 올렸던 제사용 그릇 등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이건희 회장이 기증한 청화백자 항아리는 왕실을 상징하는 용무늬가 돋보이는 도자 유물로, 국립중앙박물관 측은 ‘휴스턴 한국실의 하이라이트’라고 꼽았다. 1만여 점의 문화유산을 기부한 동원(東垣) 이홍근(1900∼1980) 선생의 ‘백자 향합’, 평생에 걸쳐 조선의 청화백자를 지키고 수집한 의사 박병래(1903∼1974) 선생의 제기접시 등도 소개된다. 박물관 관계자는 “더 많은 이들이 보고 누릴 수 있도록 유물을 소중히 수집한 기증자의 마음이 현지 관람객들에게도 전해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실의 주요 유물은 2026년 3월까지 약 2년간 대여할 예정이다. 박물관은 추후 대중 강연 등 각종 행사를 열어 한국 문화를 현지에 소개할 예정이다.

[미주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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