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이 사망한 헬기 추락 사고가 미국과 이란의 책임 공방으로 번지는 모습이다.

미국의 제재가 노후 헬기 추락을 초래했다는 목소리가 이란 내에서 나오고 일부 서방 전문가도 연관성을 제기하지만, 미국은 이를 일축하고 있다.

20일 일간 뉴욕타임스(NYT)와 워싱턴포스트(WP)에 따르면 이란 국영 IRNA 통신은 라이시 대통령의 목숨을 앗아간 헬기 추락 사고가 “기술적 고장(technical failure)”으로 인한 것이라고 보도했다.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전 이란 외무장관은 이란의 항공산업에 제재를 가한 미국이 이번 추락 사고에 책임이 있다고 말했다고 IRNA 통신이 전했다.

이란은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국제사회의 제재를 받아왔는데 여기에는 이란이 서방으로부터 수십년간 항공기와 예비 부품을 사지 못하게 한 미국의 조치도 포함돼 있다고 NYT는 설명했다.

영국 싱크탱크 채텀하우스의 중동 전문가 사남 바킬은 “이란은 헬기뿐만 아니라 비행기 추락 등 많은 항공기 사고를 겪어왔다”며 “이는 분명히 제재와 관련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매슈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이날 “악천후로 묘사되는 상황에서 45년 된 헬기를 띄우기로 한 결정의 책임은 이란 정부에 있다”며 미국 책임론을 반박했다.

존 커비 백악관 국가안보소통보좌관도 미국의 제재로 이번 추락 사고가 발생했다는 주장에 대해 “전적으로 터무니없는 소리”라고 일축했다.

로이드 오스틴 미 국방부 장관은 사고 원인에 대해 “이란 사람들이 조사하고 있고, 할 것이며, 우리는 조사 결과가 나오면 살펴볼 것”이라고 말했다.

통상 항공기 추락 사고 조사 때 제조업체의 지원을 받지만, 이란이 지원을 요청할지는 미지수다.

이번 사고 헬기는 미국의 벨 헬리콥터(현재 벨 텍스트론)가 1960년대 말부터 생산한 벨 212기종이다.

이 회사는 WP에 “우리는 이란에서 어떤 사업도 하지 않으며 이란 헬기에 대해 지원도 하지 않는다”면서 “이번 사고와 관련된 헬기의 운용 상태를 알지 못한다”고 밝혔다.

글로벌 항공 분석 전문업체 ‘시리움'(Cirium)에 따르면 이란에 등록된 벨 212기종 15대의 평균 기령(비행기 나이)은 35년이다.

이 기종은 전 세계에서 443대가 운용되고 있으며 평균 기령은 42년이다.

이란 보유 벨 212 헬기가 상대적으로 덜 노후됐지만 유지보수가 제대로 이뤄졌는지는 의문이다.

미국 항공안전재단(FSF)에 따르면 벨 212 헬기 사고는 1972년 이후 약 430건 발생했으며 이 중 40% 가까운 162건에서 사망자가 생겼다.

이란이 사고 원인에 대해 어떤 조사 결과를 내놓을지는 지켜봐야겠지만 국제 사회의 제재 여파로 이란 보유 항공기들이 노후화됐고 유지보수를 위한 부품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은 빌 클린턴 대통령 시절인 1995년 이란 민간 항공기의 유지보수를 막는 제재를 가했으며 이로 인해 이란이 정상적인 운항 연수를 넘긴 항공기를 임시로 수리해 운항하거나 때론 암시장에서 예비 부품을 구매하기도 했다고 NYT는 전했다.

2015년 서방과 이란의 ‘이란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로 이란에 대한 제재가 일부 해제됐지만 3년 후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핵합의에서 탈퇴하면서 제재가 복원됐다.

당시 트럼프 행정부는 2016년 이란에 대한 166억달러(약 22조6천억원) 규모의 미 보잉 항공기 80대 판매 계약을 무효화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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