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의대 정원 증원 논란에 대해 16일 정부 손을 들어준 것은 의료 개혁에 따른 공공복리 증진의 중요성을 인정했기 때문이다. 의대 정원 증원은 곧 필수의료와 지역의료 회복을 위한 필수 전제로 집행정지를 인용할 경우 의료 개혁에 막대한 지장을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결국 법원이 의대생들의 교육권 침해 등 일부 손해는 인정했으나 결론적으로 ‘의대 증원 2000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정지해달라’는 의료계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서 27년 만의 의대 증원에 대한 최종 확정은 초읽기에 돌입했다.
이날 서울고등법원은 소송 신청인인 의대 교수와 전공의는 1심과 같이 당사자로서의 적격성이 없다고 봐 ‘각하’ 결정을 내렸다. 교수의 경우 헌법상 교육을 할 권리가 받을 권리와 같은 차원에서 인정될 수 있는지 의문을 나타냈다. 전공의와 의대 준비생의 경우 각각 2025학년도에 교육·수련을 받을 일이 없고 아직 의대 입학이 확정된 게 아니라는 점에서 신청인 자격이 없다고 판단했다.
의대생들에 대해서는 적격성을 인정하면서도 최종적으로 신청을 기각했다. 재판부는 “행정처분의 직접 상대방이 아닌 제3자의 경우라 하더라도 당해 행정처분으로 인해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을 침해당한 경우에는 취소소송을 제기해 당부의 판단을 받을 자격이 있다. 제3자의 법률상 보호되는 이익을 비교적 넓게 인정한다는 점에서 의대생 신청인들에 대해서는 적격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의료 개혁을 통한 공공복리 증진이 일부 의대생에게 미칠 손해에 비해 보다 의대 증원을 통한 의료 개혁이라는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고 전자를 일부 희생하더라도 후자를 옹호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에 따라 의대 증원을 둘러싼 의정 갈등 상황에서 보건복지부·교육부 등 정부나 대학 총장을 상대로 총 20여 건의 집행정지·가처분 신청이 제기됐으나 법원이 의료계 등의 손을 들어준 것은 현재까지 단 한 건도 없다.
이날 재판부는 △신청인 적격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는지 △공공의 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없는지 등 세 가지를 기준으로 집행정지 여부를 판단했다. 아울러 “집행정지 여부를 결정함에 있어서 신청인의 손해뿐만 아니라 공공복리에 미칠 영향을 아울러 고려하여야 한다”며 “공공복리에 미칠 영향이 중대한지의 여부는 절대적 기준에 의하여 판단할 것이 아니라, 신청인의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와 ‘공공복리’를 비교·교량하여, 전자를 희생하더라도 후자를 옹호하여야 할 필요가 있는지 여부에 따라 상대적·개별적으로 판단되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특히 재판부는 의대 정원 증원이 의대생들에게 손해가 발생할 우려가 있으며 이를 예방할 긴급한 필요성도 인정했다. 이어 “향후 2025년 이후의 의대 정원 숫자를 구체적으로 정함에 있어서도 매년 대학 측의 의견을 존중하여 의대생들의 학습권 침해가 최소화되도록 자체적으로 산정한 숫자를 넘지 않도록 조치할 필요가 있다”는 점도 짚었다.
앞서 의료계는 그간 ‘의대 교육은 실습 등이 필요한 사정상 상당한 인적·물적 설비가 필요해 일반적인 대학 교육과 다른 특수성이 있고 거의 모든 의대들이 지금 당장 2000명이 증원되면 현실적으로 정상적인 의대 교육이 불가능하다’고 호소해왔다. 거점 국립대학들은 증원 범위 내에서 모집 인원을 축소할 수 있게 해줄 것을 정부 측에 건의해왔다.
하지만 법원은 행정소송법을 들어 의료대란의 가중 내지 국내 의료 체계의 붕괴 가능성 등을 볼 때 공직상 손해가 발생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했다. 정부의 의대 증원 결정이 국가 미래를 위한 것으로 집행정지 결정이 받아들여질 경우 공공복리에 심각한 영향이 있다고 본다면 신청 자체를 기각할 수 있다는 것이다. 행정소송법 23조 2항은 ‘법원이 행정처분 취소소송이 제기된 경우 처분 집행·절차 속행으로 생길 회복하기 어려운 손해를 예방하기 위해 긴급한 필요가 있다고 인정할 때는 처분의 효력을 정지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으며, 같은 법 23조 3항은 ‘집행정지가 공공복리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우려가 있을 때는 허용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결국 이날 법원의 판결은 교육도 중요하지만 우리나라 의료 체계가 직면할 위기로 봤을 때 공공복리가 더 중요하다고 본 셈이다.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