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단과 개인 사이의 긴장, 억압과 그에 맞선 민중의 회복력 사이의 긴장, 각자가 가진 여러 사상 사이의 긴장이 작품에 담긴 생각이라고 봅니다.”
수도 워싱턴 D.C.의 공립 박물관 및 전시관이 주변에 밀집한 지하철 스미스소니언역에서 도보로 3∼4분 거리에 위치한 국립아시아미술관 앞에 지난달 27일부터 한국 현대미술가 서도호(62) 작가 작품 ‘공인들'(Public Figures)이 전시됐다.
도시 곳곳에 위인들의 동상이 서 있는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심장부에 서 있는 이 작품은 특이하다.
얼핏 보면 동상 없는 동상대(臺)를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멀리서 보면 ‘미완성 작품’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서 보면 민초(grassroot)를 연상케 하는 ‘풀(잔디)’ 위에 ‘동상 없는 동상대’가 서 있고, 그 아래에 동상대를 떠받치고 있는 수백명의 평범한 사람들이 보인다.
9일 ‘공인들’ 전시 현장을 찾은 한국 특파원단과 만난 캐럴 허 국립아시아미술관 큐레이터는 이 작품을 설명하면서 유독 ‘긴장’ 또는 ‘갈등’을 의미하는 단어 ‘텐션'(tension)을 많이 사용했다.
동상대가 국가를 이끌어 가는 권력자들과 권력 집단이 국익과 공공선 등을 명분으로 부과하는 ‘하중’을 상징한다면 그 무게에 주저앉지 않은 채 동상대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민중의 억센 회복력으로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억압과 회복력 사이에 흐르는 긴장감이 이 작품의 메시지 중 하나일 수 있다고 큐레이터는 소개했다.
또 동상대 위는 비어있는 반면, 그것을 떠받치고 있는 이름 없는 사람들은 깨알같이 묘사해낸 이 작품은 위정자 내지 영웅과 민중 가운데 역사에서 누가 더 중요한지에 대해 생각해 보라는 질문을 던지는 것일 수 있다고 큐레이터는 덧붙였다. 서도호 작가는 현재 영국을 근거지로 삼아 세계적으로 이름을 날리고 있는 글로벌 작가이며, 이 작품이 한국인을 묘사했다는 설명은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작품에서 형상화한 사람들은 식민지와 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등으로 채워진 격동의 현대사를 보낸 한국인에 대한 ‘오마주’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또 작품을 한참 살펴보고 있자니 자기만의 ‘영웅’ 또는 ‘우상’을 떠받든 채 힘겹게 살아가는 현대인의 쓸쓸한 자화상도 보이는 듯했다.
작품의 전시를 추진하고 후원한 국제교류재단(KF) 한미미래센터 배성원 소장은 “일단 2029년 4월까지 5년간 전시될 예정”이라며 “수많은 사람이 오가는 미국 수도의 중심지에 한국 작가의 작품이 전시된 것은 매우 뜻깊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