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이펜드(연구생활장학금)’로 생활이 나아졌다는 생각은 들지 않죠. 끼니 때우기에도 부족하니까요. 허리띠 졸라매며 연구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입니다.” (한국과학기술원 박사과정 대학원생)
“작년에는 한 팀이 쓰던 연구비를 올해부턴 다른 팀들과 나눠 써야 한대요. 200만 원이 채 안 되는데, 실험에 필요한 장비를 살 수나 있을까요?” (서울 시내 공대 학부생)
올해 연구개발(R&D) 예산을 큰 폭으로 깎은 정부가 뒤늦게 과학기술계를 달래기 위해 장밋빛 투자와 지원책을 쏟아냈지만, 이공계 학생들의 불안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고 있다. 대학원생들은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을 호소하고, 학부생들은 그나마 있던 연구 참여 기회마저 줄었다. 과학기술을 우대하겠다던 정부 의지가 의대 열풍을 잠재우기엔 여전히 부족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소액이라도 보장” vs “처우 개선 미지수”
스타이펜드는 R&D 예산 삭감 이후 정부가 내놓은 대표적인 이공계 유인책이다. 대학원생이 학업과 연구에 전념할 수 있도록 매월 일정 수준의 지원금을 지급하는 방식인데, 연구실별 경제적 지원 격차를 줄이고 하한선을 두는 효과가 생긴다는 점에선 긍정적이다. 한양대 공대 석사과정에 진학 예정인 박모씨는 “스타이펜드가 도입되면 적은 금액이라도 보장받을 것”이라고 기대감을 보였다. 서울의 한 이공계 대학 교수는 “스타이펜드가 정착한다면 돈 때문에 진학을 망설이는 학생들의 선택지가 넓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문제는 지원 규모다. 남궁민상 한국과학기술원(KAIST·카이스트) 대학원 총학생회장은 “스타이펜드는 연구 인건비와 등록금 지원금, 조교 수당 등을 합산한 금액의 하한선”이라며 “(정부가 제시한 수준대로라면) 대학원생의 열악한 처우가 해결될지 미지수”라고 우려했다. 카이스트를 비롯한 4대 과학기술원에선 2019년부터 스타이펜드를 도입했다. 이를 내년부터 일반 대학으로 확대하겠다는 게 정부 계획인데, 지원 금액은 카이스트와 동일하게 석사과정생 월 80만 원, 박사과정생 110만 원으로 논의 중이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 관계자는 “과학기술원 스타이펜드와 생계급여 지급액 등을 고려한 수치”라고 설명했다.
그런데 카이스트의 ‘2023 연구환경실태조사’에 따르면 스타이펜드를 받는데도 대학원생 4명 중 1명(25.08%)이 여전히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다”고 답했다. 이공계 학생들 사이에선 최저임금도 2019년 8,350원에서 올해 9,860원으로 약 18% 오른 만큼 스타이펜드를 현실에 맞게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루 평균 7~10시간을 연구에 쏟는데, 여기에 최저시급을 적용해 월급을 환산하면 스타이펜드 지급액을 훨씬 넘는다는 것이다. 서울대 자연대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는 이모씨는 “스타이펜드 지원액을 올려야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과학기술원 스타이펜드 지급 기간은 석사 2년, 박사 4년으로 제한된다. 이를 넘기면 하한액도 보장받지 못한다. 카이스트 교무처 관계자는 지급 기간을 설정한 이유로 “스타이펜드 외에 장학금·연구비로 인건비를 충당할 수 있고, 기준이 다르면 형평성 문제가 발생할 염려가 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학생들 사이에선 전공을 비롯한 개별 상황에 따라 지급 기한과 금액이 유연해져야 할 필요성이 제기된다. 이 학교에서 생명과학 석·박사 통합과정을 밟고 있는 이기헌씨는 “원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실험을 반복하고 수정하다 보면 박사학위 취득까지 4년을 넘기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했다. 스타이펜드를 준비 중인 서울대와 연세대 측은 지급 기간·금액에 관해 “정부안이 나오면 추후 논의를 거쳐 대학 자체 기준을 마련할 계획”이라며 조정 가능성을 내비쳤다.
연구 경험 쌓으려 지원했는데, 탈락, 탈락…
대학원 선배들의 경제적 어려움은 학부생들의 진로 선택에 큰 영향을 미친다. 아무리 연구가 좋아도 생활이 어려워지면 수입이 많은 의약학계열로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게다가 올해는 학부생이 국가 R&D에 참여해 과학자로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해 온 프로그램(현장 연계 미래선도 인재 양성 지원사업)마저 대폭 축소됐다. 지난해부터 여기 참여해온 한양대 공대의 한 4학년생은 “실제 연구에 참여하며 대학원 생활을 체험하려던 계획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이라며 불안해했다.
2021년 시작된 이 프로그램에선 수도권과 영·호남권, 울산권, 충청권 등 지역별 대학 연합체(실전문제연구단)가 학부생 중심으로 수십 개 팀을 꾸려 다양한 연구 경험을 제공해왔다. 한국연구재단에 따르면 이 프로그램의 올해 예산은 16억5,200만 원으로, 지난해(85억6,000만 원)와 비교해 81%나 감소했다. 결국 울산권과 충청권 팀들은 활동이 중단됐고, 다른 지역도 규모가 쪼그라들었다.
영·호남권 실전문제연구단 관계자는 “연구 참여 후 특허 출원까지 경험하며 대학원 진학을 결심한 학생들도 있다”며 “학부생이 국가 R&D에 참여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라 많은 학생이 지원했는데 대거 탈락시킬 수밖에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전북 군산대는 작년보다 60%나 삭감된 예산을 받았다. 군산대 관계자는 “연구 경험을 쌓고 싶은 학생 다수가 탈락해 불만이 커진 상황”이라고 답답해했다.
경제적 어려움 못지않게 과학자를 꿈꾸는 청년들을 괴롭히는 주범이 또 있다. 이공계 학생들을 바라보는 시선에 “의대에 가지 못해 이공계로 밀려난 게 아니냐”는 인식이 깔려 있다는 것이다. 남궁민상씨는 “낮은 인건비만큼이나 부정적인 인식이 학생들 사기를 꺾는다”며 “제도의 뒷받침도 필요하지만, 근본적으로 과학자의 사회적 지위와 성장 가능성을 높일 수 있도록 국가 차원에서 더 세심하게 신경 써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카이스트 공대의 한 교수는 “이공계 기피 현상은 단순히 돈 문제가 아니기에 스타이펜드 몇 푼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며 “과학자로서 보람과 사명감을 느낄 수 있고, 그에 따른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시스템이 구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