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게 보면 2008년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주식시장은 유례없는 강세장을 구가하고 있다. 미국 증시의 주요 지수들은 잇따라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고, 일본 증시 역시 다시 도달하기 힘들 것으로 봤던 1989년 버블 국면의 고점을 넘어섰다. 유럽의 주요 증시들도 대부분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있다.
장기 박스권에 머물러 있는 한국 증시 투자자 입장에선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 증시의 코스피도 3,300포인트 대라는 신천지에 올랐던 시기가 불과 3년 전이다.
글로벌 증시의 강세를 주도하는 힘은 미국에서 나왔다고 볼 수 있다.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연준)가 양적완화를 통해 기축통화인 달러를 글로벌 경제에 맘껏 공급했고, 통화스와프를 통해 미국 이외 국가 중앙은행들에 대한 최종 대부자 역할을 수행했다. 민간 영역에선 ‘FAANG’과 ‘Magnificient 7’로 대표되는 빅테크 기업들의 혁신이 있었다.
최근엔 특정 산업이 아닌 미국의 경제 자체가 뜀박질을 하고 있다. 2023년 미국의 GDP(국내총생산) 성장률은 2.5%로 한국의 1.4%를 넘어섰고, IMF(국제통화기금)가 추정한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미국이 2.7%로, 한국의 2.2%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의 경기 호조에 힘입어 2024년 1분기 한국의 대미 수출액은 2000년 들어 부동의 1위를 지켜왔던 대중 수출액을 넘어섰다.
2008년 이후의 강세장은 미국에 의해 주도된 만큼 강세장 종결의 신호탄도 미국에서 나올 것으로 보인다. 주식시장에서도 상승세를 주도했던 선도주가 꺾이면서 새로운 약세장이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요즘 미국 경제를 보면 걱정이 없어 보이지만 그래도 재정건전성에 대해선 경계심을 가져야 한다. 미국의 재정적자가 빠른 속도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정부부채는 2023년 말 기준 GDP의 122%에 달한다. 요즘처럼 국채 금리가 고공권에서 움직인다면 미국 정부가 부담해야 할 이자 비용이 크게 증가하게 된다.
올해 11월에 있을 미국의 대통령 선거도 재정에 대한 우려를 높일 수 있는 이벤트다. 조 바이든 대통령이 재선된다면 기존의 재정 폭주가 지속될 것이다. 이 경우 IMF 추계에 따르면 미국의 GDP 대비 정부부채가 2028년 말 132%까지 높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되면 문제는 더 심각할 수 있는데, 대폭적인 감세를 공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감세는 보수 정파인 공화당의 단골 공약이다. 감세 자체는 충분히 고려할 수 있는 정책적 선택이지만 정부부채가 커진 상황에서 단행되는 감세는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요즘 트럼프 캠프의 경제 책사로 자주 거론되는 이가 아서 래퍼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때 세율과 재정수입의 관계를 설명한 ‘래퍼 곡선’으로 유명세를 탔던 인물이다. 래퍼는 세율이 지나치게 높으면 정부의 재정수입이 오히려 줄어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세금으로 너무 많은 파이를 가져가면 민간 플레이어들의 의욕 저하가 성장을 잠식한다고 본 것이다. 적절한 감세는 민간의 활력을 높여 경제 규모를 키울 수 있기 때문에 정부의 세입이 늘어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 운용에서 정부의 몫을 줄이고 민간의 역할을 크게 하자는 주장은 경제적 보수주의자라면 할 수 있는 주장이다. 문제는 감세가 성장의 활력을 제고해 세입을 늘리고 재정건전성을 높일 수 있다는 주장이다. 역사적으로 감세가 재정건전성을 높인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감세는 재정을 악화시키곤 했다.
레이건 행정부 때 대폭적인 감세를 단행했음에도 미국의 재정적자는 늘어났다. 정부의 지출을 줄이는 건 쉬운 일이 아니고, 특히 1980년대는 소련과의 냉전으로 국방비가 경직적인 항목이었기 때문이다. 미국은 1980년대 내내 재정수지와 경상수지 적자라는 쌍둥이 적자로 고전했다. 두 번째 감세는 2001~2002년 공화당 부시 행정부 때 단행됐다. 감세 이후 미국의 재정적자는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재정지출은 미국 경제를 강건하게 유지시키고 있지만 인플레이션이라는 비용도 함께 발생시킨다. 또 고금리와 급격히 늘어난 정부부채도 지속 가능한 조합이 아니다. 글로벌 자산시장의 장기 강세장이 종결되는 신호탄은 미국의 과도한 정부부채에서 잉태될 가능성이 높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