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상털기·취업 불이익 우려”
대학가 휩쓴 반전 시위…신분 숨기고 동참하는 학생 늘어
마스크나 팔 상징 두건으로 얼굴 가려…”범죄자처럼 보여 위협적” 반발도
가자지구 전쟁 반대 시위가 미국 전역 대학에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가운데 온라인 ‘신상 털기’와 같은 불이익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시위에 동참하는 학생이 늘고 있다고 일간 뉴욕타임스(NYT)가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번 시위의 중심에 있는 컬럼비아대 2학년에 재학 중인 파비올라는 텐트 농성에 참여하면서 검은색 수술용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신분이 노출되면 자신의 유학생 비자 발급에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한 것이다.
이는 파비올라 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동부 아이비리그부터 서부 캘리포니아까지, 미국 전역을 휩쓴 반전 시위를 이끄는 학생들 중에는 마스크를 쓰거나 팔레스타인 전통 복식용 흑백 체크무늬 두건(카피예)을 얼굴에 둘러 착용해 신분을 가리는 경우가 점점 늘고 있다.
이는 1968년 미국 대학가에서 벌어진 베트남전 반대 시위 등 과거에는 볼 수 없던 현상이다.
이들이 얼굴을 가리는 가장 큰 이유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 등을 통한 이른바 ‘신상 털기’에 대한 우려다.
언론 보도나 SNS 등을 통해 얼굴이 알려질 경우 일부 친이스라엘 단체에 의해 ‘반유대주의자’로 낙인찍혀 자신들의 신상이 원치 않게 퍼질 수 있다는 것이다.
또 과거에는 학생 운동 참가자 대부분이 백인 남성이었던 것에 비해 최근에는 유학생 신분으로 학교에 다니는 다양한 국적과 인종의 학생들이 늘어난 것도 이러한 변화에 영향을 미쳤다.
이들은 시위를 통해 목소리를 내면서도 이로 인해 취업이나 비자 발급에서 불이익을 당하기를 바라지 않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최근 카피예를 착용하고 시위에 참여한 한 노스웨스턴대 학생은 NYT에 익명을 요구하며 “내 이름을 말하면, 나는 미래를 잃게 된다”고 말했다.
시위 참가자 전부가 얼굴을 가리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행동이 다른 이들에게 위협적으로 느껴질 수 있으며 외부인의 개입 여부를 식별하기 어렵게 한다는 비판적인 시각도 있다.
유대인 단체 반명예훼손연맹(ADL) 조너선 그린블랫 최고경영자(CEO)는 “시위에 은행강도 같은 모습으로 나타난다면 헌법상 권리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행위를 하러 온 것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라며 얼굴을 가리는 행위에는 “상대쪽을 위협하는 효과가 있다”고 비판했다.
시위대를 옹호하는 쪽에서는 온라인을 통한 신상 털기와 괴롭힘이 만연하고 취업난도 심각한 상황에서 이러한 시위 문화는 불가피한 선택이라고 항변한다.
예일대에서 친팔레스타인 단체를 만드는 것을 도운 재학생 엘리야 바칼은 NYT에 자신은 신분을 숨기지 않지만 다른 선택을 한 학생들을 이해한다고 말했다.
그는 시위에 참여했다가 학교에서 쫓겨나거나 ‘반유대주의자’로 낙인 찍힌다면 수십년간 그 학생을 따라다니는 꼬리표가 될 수도 있다면서 “오늘날 졸업 후 경제적 안정을 얻는 것에 대한 걱정은 이전보다 훨씬 크며, 신상 공개나 체포로 학생들이 감당해야 할 결과도 훨씬 크다”고 말했다.
컬럼비아대 재학생 아이단 파리는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에 “사람들은 시위대 사람들의 얼굴 사진을 찍어 온라인에서 괴롭히려고 한다”며 “컬럼비아대 캠퍼스 안에는 얼굴 인식 소프트웨어를 가진 카메라도 있어 하루아침에 정학당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