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외교부에서 여행금지 국가로 지정한 카리브해 섬나라 아이티에서 교민들이 철수 준비를 하는 가운데 당장 조업을 중단할 수 없는 일부 한인 업체는 안전한 경제 활동 루트 마련을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30일(현지시간) 아이티를 겸임국으로 둔 주도미니카공화국 한국대사관과 카리브해 국가 한인 커뮤니티 등을 종합하면 아이티는 이날 오전 11시(한국시간 5월 1일 0시)를 기해 외교부에서 지정하는 여행금지 국가(여행경보 4단계) 명단에 올랐다.
주도미니카공화국 한국대사관은 공지를 통해 “여행경보 4단계 발령에도 해당 지역에 방문·체류하는 경우 여권법 등 관련 규정에 따른 처벌을 받을 수 있다”며 “정부는 앞으로 현지 상황 변화를 예의주시하며 국민 안전 확보를 위한 조처를 강구할 것”이라고 안내했다.
이에 따라 현지 교민들은 아이티에서 철수하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기준 117명이었던 교민 규모는 현재 60명 안팎으로 줄었다. 앞서 한국 정부는 최근 13명을 인근 도미니카공화국으로 대피시키기도 했다.
다만, 일부 업체 직원들은 당장 공장 설비를 그대로 두고 나올 수 없는 상황을 고려해, 짧은 기간 체류를 위한 예외적 여권 사용 허가를 요청할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규정상 허용되는 조처다.
아이티에는 봉제, 섬유 가공, 프린팅 같은 업종에 한인 업체가 있다.
일부 업체들은 이웃 도미니카공화국을 임시 거점으로 활용하는 방안도 모색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이티 내 공장은 ‘믿을 만한’ 현지인의 책임하에 두고 운영하는 방식이다.
아이티와 함께 히스파니올라(이스파뇰라)섬을 각각 영토로 두고 있는 도미니카공화국은 현재 국경 보안을 강화한 상태다.
이 때문에 아이티 수도 포르토프랭스와는 달리 국경 지대에서의 육로 왕래는 비교적 안전하고 자유로운 상황이다.
한 교민은 연합뉴스에 “각종 자재나 수출품은 국경을 통해 주고받고 있다”며 “공장 운영자금의 경우 아이티 내 직원이 국경으로 관련 서류를 가져와서 일을 처리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새 정부 구성을 위한 이 나라 정치권의 움직임도 구체화하고 있다.
아이티 과도정부 성격의 과도위원회는 이날 프리츠 벨리제르 전 체육부 장관을 신임 총리로 내정했다고 AFP·AP통신이 보도했다.
지난 25일 출범한 이 나라 과도위원회는 또 전 상원 의장인 에드가르 르블랑을 위원장으로 선출하는 등 리더십 공백을 메우는 결정을 하나둘 내리고 있다.
아이티 과도위원회는 투표권을 가진 7명의 위원과 2명의 참관인 등 9명으로 꾸려졌다. 임기는 2026년 2월 7일까지다.
과도위원들은 임기 만료 전 새 대통령이 취임해 정권을 인수할 수 있도록 대선을 준비하는 한편 국제 경찰력 지원을 받기 위한 논의 및 관련 법적·행정적 절차를 서두를 예정이다.
다만 아이티 주민들은 갱단의 조직적인 폭력 행위로 치안이 붕괴한 조국에서 과도위원회가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워하고 있다고 AP는 보도했다.
2016년 이후 선거를 치른 적 없는 아이티에는 대통령과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무원이 전무하다.
수도 포르토프랭스의 70∼80%를 장악한 것으로 알려진 갱단은 주요 인프라를 마비시키며 살인·약탈·성폭행 등 범행을 이어가고 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