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과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가 29일(이하 한국시간) 첫 양자 회담을 열어 정국 현안을 폭넓게 논의했지만 대부분 사안에서 인식 차를 좁히지 못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130여분 간 대좌했지만, 이날 회담과 관련한 별도의 합의문은 채택하지 못했다.
회담 후 대통령실은 “소통과 협치의 첫 발걸음을 내디뎠다”며 이날 만남에 의미를 부여했지만, 민주당은 “국정기조를 전환하겠다는 의지가 없어 보였다”고 냉담한 평가를 내놨다.
이 대표는 회담 시작에 앞서 모두 발언을 통해 윤 대통령의 잇단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에 대한 유감 표명, ‘해병대 채상병 사망사건 외압 의혹 특검법’과 이태원 참사 특별법 수용 등의 요구사항을 나열했지만, 윤 대통령은 대부분의 요구에 난색을 표한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윤 대통령은 이 대표가 모든 국민에 1인당 25만원을 주는 ‘민생 회복 긴급조치’를 요구한 데 대해 “현재 편성돼 있는 소상공인 지원 예산을 잘 집행하는 게 우선”이라며 사실상 반대했다고 회담에 배석한 민주당 진성준 정책위의장이 전했다.
윤 대통령은 “물가, 금리, 재정에 미치는 상황을 고려할 때 어려운 분을 더 효과적으로 지원하는 게 더 바람직하다”고 답했다고 이도운 홍보수석은 전했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여·야·정 민생협의체 가동과 관련해서도 이견을 드러냈다.
이 수석은 브리핑에서 “윤 대통령은 ‘민생협의를 위해 여야정 협의체 같은 기구가 필요할 수 있다’고 했지만, 이 대표는 ‘여야가 국회라는 공간을 우선 활용하자’는 입장을 내비쳤다”고 전했다.
진 정책위의장은 “대통령은 민생회복 긴급조치에 대해 현 예산 집행이 우선이며, 집행 과정에서 여·야·정 민생협의체를 가동해 필요한 논의가 무엇이 더 있는지 논의하자고 말했다. 대통령이 그 입장을 고수해 민생협의체에 대한 추가적 논의는 진행되기 어려웠다”고 전했다.
이 대표는 모두발언에서 “이번 기회에 국정 운영에 큰 부담이 되고 있는 가족 등 주변 인사들의 여러 의혹도 정리하고 넘어가면 좋겠다”라고도 말했다.
이는 김건희 여사 관련 특검법 수용을 에둘러 압박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다만, 비공개 회의에서 김 여사 특검법과 관련한 언급은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이태원참사 특별법에 대해서는 “독소조항이 있다”며 사실상 거부했다고 민주당 박성준 대변인이 전했다.
다만, 이 수석은 “윤 대통령은 민간조사위원회에서 영장청구권을 갖는 등 법리적으로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지적했다”면서 “이런 부분을 해소하고 다시 논의한다면 무조건 반대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을 밝혔다”고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또 내년도 연구·개발(R&D) 예산과 관련, 민주당이 요구해온 추가경정예산 편성에 부정적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내년도 예산안에 증액분을 반영하겠다고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연금 개혁과 관련, 이 대표는 국회 연금개혁특위 공론화위에서 결론이 났으니 신속히 방향을 정하고 입법을 추진해야 한다고 밝혔지만, 윤 대통령은 21대 국회 임기가 얼마 안 남았으니 22대 국회에서 천천히 논의하자는 입장을 보였다고 박 대변인은 전했다.
이 대표는 비공개 회담에서는 각종 특검법과 이태원특별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고 한다.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이날 주요 현안 가운데 유일하게 의대 증원 필요성에 대해서는 공감했다.
이 수석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합의에 이르지는 못했지만, 총론적·대승적으로 인식을 같이 한 부분은 있었다”면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의료 개혁이 필요하고, 의대 정원 증원이 불가피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했다”고 전했다.
이어 “이 대표는 의료 개혁이 시급한 과제이며, 대통령의 정책 방향이 옳고 민주당도 협력하겠다고 했다”고 덧붙였다.
박 대변인도 “의료 개혁의 필요성에 대한 공감은, 사실 성과라고 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있었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아울러 필요할 때마다 앞으로 계속 만남을 이어갈 필요성에 대해서도 의견을 모았다.
이 수석은 “윤 대통령과 이 대표는 앞으로도 종종 만나기로 했다”며 “두 분이 만날 수도 있고 여당 지도체제가 들어서면 3자 회동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회담에서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간 배석자 없는 단독 만남은 이뤄지지 않았고, 사의를 표명한 한덕수 국무총리의 후임 인선도 논의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윤 대통령은 김대중 정부에서 민정수석실을 없앴다가 2년 뒤 부활한 사례를 거론하며 민심 수렴과 정부 정책이 현장에서 시행될 때의 문제점 등과 관련한 정보가 부족한 부분이 있음을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현 정부 들어 폐지한 민정수석실의 민생·민심 청취 기능을 담당하는 조직 신설을 염두에 두고 있음을 내비친 것으로 풀이된다.
대통령과 제1야당 대표가 일대일 회담이 성사된 것은 지난 2018년 4월 문재인 대통령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간 회담 이후 약 6년 만이며, 윤석열 대통령 취임 이후로는 720일 만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