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를 ‘장사꾼’으로만 봐야 하나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로이터 연합뉴스 자료사진. 재판매 및 DB 금지]

트럼프 관세전략 해밀턴에서 유래
미 제조업 육성으로 정책기조 변화
EU 등도 지역 내 산업 키우기 나서
수출 의존도 높은 한국 커다란 위기
신산업 및 금융정책 수립 절실해

미국 UC버클리대 교수인 스티븐 S 코언과 제임스 브래드퍼드 들롱은 한국과 일본·중국의 경제개발 모델이 사실 미국에서 왔다고 본다. 정부가 국내 제조업을 키우기 위해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고 사회기반시설(SOC)에 투자하면서 선수로도 함께 뛰는 것 말이다. 두 사람은 해당 전략이 1791년 ‘제조업에 관한 보고서(Report on Manufactures)’를 쓴 미 초대 재무장관 알렉산더 해밀턴이 원조라고 생각한다. 실제로 제조업 후발 주자인 미국은 이 시기에 영국을 따라잡기 위해 관세를 60% 안팎까지 높였다. 전형적인 유치산업 보호 전략이다.

이 같은 접근은 상당히 유효해 미국이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으로 거듭나는 데 일조했다. 1930년에 만들어진 스무트·홀리 관세법(2만여 개 품목 관세 평균 59%, 최대 400%)이 대공황을 악화시킨 주범으로 꼽히기도 하지만 미국의 경제정책을 관통해온 자국 산업 보호 정책은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고 혁신을 꽃피우는 기반이 됐다.

많은 이들이 잊고 있지만 미국은 제조업 강국이었다. 제조업 없이 어떻게 두 차례 세계대전을 이겼겠는가. 한때 철강과 조선·자동차·전자레인지·냉장고 등 모든 것을 미국이 주도했다. 대량생산을 이끌어낸 포드 시스템도 미국산이다.

상황이 바뀐 건 독일과 일본의 부상 그리고 미국의 변화 때문이다. 2차 세계대전 후 독일과 일본은 정부 지원과 각종 비관세 장벽을 통해 자국 산업을 키우고 수출을 확대했다. 미국은 이들 나라의 수출품을 받아주고 달러를 내줬다. 한국과 대만·중국도 같은 방식을 따랐다. 높은 관세와 보조금, 대출 몰아주기로 제조업을 키웠다. 처음에는 경공업에서 시작했지만 차츰 철강과 조선·석유화학·자동차·반도체·가전제품으로 뻗어갔다. 때로는 환율의 덕을 보기도 했다.

미국도 나쁘지는 않았다. 안방 시장을 내줬지만 미 국민들은 값싼 상품을 살 수 있었다. 미국은 여전히 항공과 첨단산업·바이오에서 우위였고 동아시아 국가들은 무역에서 남긴 돈으로 미 국채를 사줬다. 천문학적인 무역적자에도 국채가 계속 팔려나가면서 미국이 흔들릴 일은 없었다. 미국 역시 압도적인 군사력을 바탕으로 자유무역과 항행의 자유를 보장했다.

틈은 중국의 굴기와 코로나19에서 생겼다. 중국은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꾸준히 미 국채를 내다 팔았다. 인공지능(AI)과 첨단반도체·전기자동차에서 중국이 미국을 위협하기 시작했다. 코로나19는 공급망 측면에서 미국 경제의 치명적 약점을 노출시켰다.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전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의 말처럼 어떤 경제 강국도 제조업을 포기한 나라가 없는데 미국이 그 길을 가고 있던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보편관세·상호관세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한다. 높은 관세와 제조업 육성으로 미국이 번영했던 시기로 되돌아가려는 시도다. 가족과 신앙을 중심으로 똘똘 뭉친 안전하고 부유한 미국 사회를 재건하려는 움직임이다. 트럼프가 가상자산 비축에 나선 것도 따지고 보면 미 국채와 연동된 스테이블코인을 키우려는 의도다. 어떤 식으로든 달러화 패권을 유지하겠다는 얘기다.

트럼프를 장사꾼으로만 보면 안 된다. 그의 뒤에 있는 배경과 시대정신을 봐야 한다. 트럼프는 2029년 백악관에서 사라지겠지만 미국과 글로벌 경제의 대전환은 시작됐고 거대한 물결을 바꿀 수 없다. 트럼프에 자극받은 유럽연합(EU)도 ‘바이 유러피언’을 앞세워 자동차와 반도체·방위산업 육성에 힘을 쏟고 있다.

문제는 한국이다. 글로벌 자유무역과 수출에 기댄 한국 경제의 성공 공식이 한계에 다다랐다. 새로운 산업정책과 이를 뒷받침할 금융·재정정책이 절실하지만 지난해 12월 비상계엄 사태 이후 관가는 ‘올스톱’됐다. 정치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 탄핵과 26일로 예정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공직선거법 2심 결과가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관세전쟁의 결말을 예측하기는 어렵지만 자국 내 제조업 육성이라는 도도한 흐름은 계속될 것이다. 무역 의존도가 75%인 한국 경제는 어떤 대안을 내놓을 것인가. 정치 리스크 탓에 어떤 일도 하기 어렵다고 하기에는 글로벌 정세 변화가 너무 빠르고 두렵다.

김영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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