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선 패배 승복 연설 후 20일만인 지난 26일(현지시간) 카멀라 해리스 미국 부통령이 지지자들에게 한 발언을 담은 동영상이 눈길을 모았다.
“누구도 여러분들의 힘을 빼앗아 가게 하지 말라”며 격려하는 메시지였는데, 특유의 활력과 유쾌함을 잃은 해리스의 모습은 마치 독재정권의 박해를 받는 야당 지도자가 지지자들에게 ‘항전’을 독려하는 상황을 방불케 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모습이 말해주듯 민주당은 아직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백악관과 의회 권력을 모두 공화당에 내 준 민주당의 패인에 대한 ‘성찰’은 ‘트럼프 현상’을 이번에도 충분히 짚어내지 못한 미국 주류 매체발로 이뤄지고 있다.
언론이 공통적으로 진단하는 민주당 패인은 고물가와 불법이민, 문화 이슈 등이다
세 이슈를 관통하는 문제는 진보정치가 보통 사람들의 민생과 불만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공감력’을 잃은 것이 아닐까 한다.
고물가의 원인이 어찌 바이든 행정부 탓이기만 하겠냐마는 바이든 정부는 장바구니 물가 상승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해결책을 찾기보다는 개선 흐름을 보이는 각종 지표를 홍보하며, 학자금 대출 탕감과 같은 부차적인 지원책을 내놓는 데 그쳤다.
이와 관련, 워싱턴의 한 싱크탱크 관계자는 민생이 어려워진 때 해리스 캠프가 ‘JOY'(기쁨)를 모토로 내세운 것은 패착이었다고 말했다.
국경 문제에서도 마찬가지로 민주당은 보통 사람들의 ‘불만’에 공감하지 못했다. 인권을 중시하는 민주당 정권의 난민 수용 정책이 정치적 박해와 무관한 이들의 미국행 통로가 되자 어렵게 시민권을 따낸 히스패닉 정착민들은 분노했고, 그것은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지지 히스패닉표의 상승에 영향을 줬다.
작년 한때 하루 1만명씩 들어온 불법이민자들을 죄다 범죄자로 간주하는 도널드 트럼프 당선인의 주장은 터무니 없었다.
하지만 정부가 트럼프의 조종을 받는 공화당 하원의원들의 국경보안법안 처리 거부만 탓한 채, 단호한 조치에 나서지 않는 동안 불법이민 문제는 공화당의 득표 전략으로서 유효했다.
그리고 문화이슈.
공화당내 대표적 반(反) 트럼프 인사인 밋 롬니 상원의원(2012년 공화당 대통령 후보)은 10월8일 유타대 강연에서 “민주당이 질 것으로 본다”면서 “그들의 정책 때문이 아니라 문화 이슈에 대한 입장 때문”이라고 했는데, 필자는 그의 예상과 진단이 적중했다고 본다.
점점 ‘엘리트 정당’이 되어가는 민주당에서 ‘정치적 올바름'(PC)이 마치 수학공식처럼 최우선 준거가 되면서 대중의 보편적 정서에서 멀어진 입장과 정책들이 누적되어온 상황을 지적한 말이었다.
선거전 막판 트럼프 캠프는 바이든 행정부의 수감자 성전환 수술 비용 지원 정책을 비롯해 일부 논쟁적인 소수자 포용 정책을 집요하게 물고 늘어졌다.
그 와중인 10월 16일 해리스 부통령은 폭스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성 전환 수술에 세금을 쓰는 것을 여전히 지지하느냐’는 질문을 받자 “나는 법을 따를 것”이라고 답했다.
법률가(검사) 출신인 해리스 입장에서 ‘정답’일 수 있었지만 해당 정책에 위화감을 느끼는 중도 또는 보수층의 적지 않은 유권자들의 공감을 끌어내기 어려운 답이자, 트럼프 캠프가 쾌재를 부른 답이었다.
보수 우위의 연방대법원과 공화당 다수의 연방 의회 하에서 트럼프가 4년으로 제한된 임기 동안 제왕적 대통령이 되려 할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경험이 부족하고 성(性)비위 의혹까지 있는 충성파 측근을 요직에 기용하는 모습에서 그런 우려는 현실로 다가오는 듯하다.
사회를 창공의 새에 비유한다면 양 날개 중 하나라 할 진보가 대중의 삶과 정서에 대한 공감 능력을 상실하고, 이념과 정체성 이슈에 집중할 때 민주주의는 시험대에 서게 된다는 것. 전 세계가 이번 미국 선거를 보며 얻을 수 있는 교훈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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