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사가 병원과 협상해 비용 낮춰

 뱀에 물려 응급실 진료를 받은 두 살짜리 아기에게 4억 원에 달하는 진료비가 청구된 사실이 보도됐다. 민간 보험사가 병원과 협상을 벌인 끝에 진료비를 낮추긴 했지만 ‘돈 없는 사람은 빨리 죽는다’는 미국의 취약한 공공 의료 시스템이 또다시 도마에 올랐다.

미 워싱턴포스트(WP)는 지난달 30일 샌디에이고에 거주하는 브리글랜드 페퍼(2)의 사례를 보도하며 미국 의료시스템의 허점을 꼬집었다.

WP에 따르면 페퍼는 지난 4월, 집 뒷마당에서 놀다가 방울뱀에게 오른손이 물렸다. 손에서 피가 나는 것을 발견한 아이의 엄마는 즉각 911에 신고했고 페퍼는 구급차로 인근 병원에 이송됐다. 당시 심하게 부어 오르고 보라색으로 변색됐던 페퍼의 손은 중환자실에서 의료진이 항독제 ‘아나빕’을 투여한 후 진전을 보였다. 겨드랑이까지 번졌던 붓기는 서서히 가라앉았고 이틀 뒤 페퍼는 퇴원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 페퍼의 부모는 며칠 뒤 집으로 날아온 진료비 청구서에 경악했다. 병원이 페퍼 부모에게 청구한 진료비는 총 29만7,461달러로 △구급차 이송 △응급실 방문 △약 처방 △중환자실 입원비가 포함됐다. 특히 붓기를 가라앉히기 위해 처방한 항독제 아나빕만 21만3,278달러에 달했다.

이상한 점은 서로 다른 두 병원에서 같은 항독제에 대해 큰 차이가 나는 금액을 청구했다는 것이다. 페퍼가 처음 찾은 병원은 아나빕 한 병당 9,574달러(1,300만 원)를 청구했는데 두 번째로 방문한 병원에선 5,876달러(810만 원)을 청구했다.

페퍼의 청구서를 검토한 스테이시 두세치나 밴더빌트대학 의료센터 교수는 “약물 가격은 병원에서 만들어 낸 숫자”라며 “실제 약물 비용과 전혀 관련이 없다”고 지적했다. 공공 의료보험이 아닌 민간 의료보험에 의존하는 미국에서 진료비는 병원이 ‘부르는 게 값’인 셈이다.

다행히 페퍼 측 보험사 샤프 헬스 플랜은 병원과 협상해 항독제 비용을 크게 낮췄다. 이에 따라 페퍼 가족은 자기부담금 7,200달러(990만 원)만 내고 나머지 병원비는 대부분 보험으로 충당할 수 있었다. 다만 구급차 비용 등에 대해 추가로 1만1,300달러(1,500만 원)의 청구서를 또 받았다고 한다.

WP는 “미국 병원에서 천문학적 치료비를 청구 받으면 협상을 준비하는 게 좋다”며 “병원을 비롯한 의료서비스 제공자들은 자신들이 청구하는 금액이 비싸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전했다. 이미 협상을 통해 깎일 것을 예상하고 비싸게 청구한다는 의미다.

0
0
Share:

Leave a Reply

Your email address will not be published. Required fields are marked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