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법 위반 아냐” 하면서도…인정 않는 北
억류된 ‘용병’ 북한군, 개인 의사 심문 후
한국 송환 가능…탈북 지원 가능해져
국가정보원이 우크라이나 현지에서 러시아 파병 북한군을 상대로 적극 움직이는 건 다목적 포석에 따른 것이다. 파병을 공식 인정하지 않는 북한 당국을 압박하는 한편, 북한 병력의 탈북을 유도해 한국으로 송환하려는 노림수가 깔려 있다. 어느 경우든 김정은 정권에 치명타를 가할 수 있다. 러시아 남부 쿠르스크를 비롯한 격전지에서 ‘총알받이’로 나설 북한군을 상대로 대북심리전을 벌일 경우 우리 정부의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부수적 효과도 노렸다.
27일 복수의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국정원과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는 쿠르스크에 투입될 북한군 수천 명에 맞선 대응방안을 놓고 우크라이나 당국과 물밑 협의가 한창이다. 특히 우크라이나가 북한군 신병을 확보하는 상황에서 이들의 탈북의사 등을 확인하는 데 우리 측의 역할이 크다. 북한이 파병을 선언하지 않아 북한군은 정식 군대가 아니라 용병으로 간주되는 만큼, 향후 북한 병사들이 억류되더라도 북한 당국이 협상에 나서기 어려운 점을 노린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파병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교전당사국으로서 교전권을 행사할 수 없다”면서 “향후 항복하거나 억류된 병사들의 의사를 확인해 탈북을 지원하게 된다면 김정은은 파병에 대한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러시아의 다급한 처지를 이용해 북한의 전략적 가치를 높이려 보낸 군 병력이 역으로 김정은 체제의 불안을 촉발하는 약점으로 작용할 수 있는 것이다.
앞서 18일 국정원은 보도자료를 내고 북한군 파병과 북한의 러시아 참전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교전 당사국인 우크라이나를 제외하면 전 세계에서 가장 빨랐다. 당초 정부의 목표는 파병 지휘계통의 정점에 있는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전쟁범죄 혐의를 적용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북한, 러시아는 물론 미국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도 ‘파병’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고 있다. 정부의 구상이 틀어진 셈이다. 김용현 국방부 장관이 24일 국회 국방위 감사에서 “말이 파병이지, 사실 파병이 아니라 용병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고 입장을 바꾼 것도 그 때문이다.
정경운 한국전략문제연구소 전문위원은 “국외 교전지역으로 1만2,000명의 부대를 보내는 건 국가적 차원의 일이고 파병으로 보는 것이 극히 상식적”이라면서도 “하지만 북한과 러시아가 정식 파병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면 △교전 당사국으로서 북한의 지위 △전장에 투입된 북한군의 신분 △포로 발생 시 조치와 대우 △전후 처리 등에서 예상하기 어려운 다양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참전한 북한군은 교전에 참여한 군인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은 대외매체인 조선중앙통신을 통해 러시아 파병과 관련 “그러한 일이 있다면 국제법적 규범에 부합되는 행동일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정작 주민들이 보는 대내매체인 노동신문과 조선중앙TV에서는 아무런 소식을 전하지 않고 있다.
한편, 일본 교도통신은 이날 우크라이나 당국이 입수한 러시아군의 북한군 파견부대 명단을 인용, 김 위원장의 군부 측근인 김영복 조선인민군 총참모부 부총참모장이 최근 러시아에 입국했다고 전했다. 김영복은 김 위원장이 지난 3월 서부지구 중요 작전훈련 기지를 방문했을 때 수행원 명단에 포함된 인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