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관심집중 떨어지면 폭파쇼.. 국제사회 농락하는 벼랑끝 전술

북한이 15일 경의선과 동해선 도로를 폭파했다. 우리 군이 무인기를 띄워 평양 상공에 삐라를 뿌렸다고 11일 주장하더니 불과 나흘 만에 남북 간 연결도로를 모두 끊었다. 북한은 이전에도 ‘폭파 퍼포먼스’로 한반도 정세를 자신들이 주도하고 있다고 강변하곤 했다. 이번까지 포함해 5번째다.

다만 이번 조치의 경우 대남 위협에 그치지 않고, 김정은이 ‘적대적 국가관계’로 규정한 남북관계의 실상을 행동으로 입증한 것이다. 윤석열 정부는 북한의 추가 도발을 포함해 향후 대북정책에 상당한 부담을 떠안게 됐다.

북한의 속 보이는 폭파쇼는 2008년 6월 27일 영변 5MW 원자로 냉각탑 폭파에서 시작됐다. 당시 북한은 2007년 북핵 6자 회담 합의에 따라 영변의 실험용 원자로와 재처리 시설 및 핵연료봉 제조시설 불능화를 이행하는 차원에서 냉각탑을 무너뜨렸다. 냉각탑 위로 시커먼 매연이 치솟고, 사방으로 불길이 퍼지는 장면이 미국 CNN을 통해 생중계됐다. 미국은 이 대가로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했다.

하지만 북한의 본색은 곧 드러났다. 5년 뒤인 2013년 “영변의 모든 핵시설과 원자로를 재가동한다”고 발표했다. 북한은 이미 용도 폐기된 냉각탑을 폭파시키며 기만 전술을 펼쳤고, 이를 통해 자신들이 원하던 것을 얻어낼 수 있었다.

북한은 2018년 5월 24일에도 언론이 보는 앞에서 폭파쇼를 벌였다. 풍계리 핵실험장의 2·3·4번 갱도와 주변 막사, 생활 건물 등을 5시간에 걸쳐 연쇄 폭파했다. 당시 북한은 한 달 전 판문점에서 열린 남북정상회담에서 합의한 비핵화의 첫 이행 조치라고 선언했다. 여러 차례 핵실험을 통해 노후한 2번 갱도 외에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3·4번 갱도까지 없앴다면서 북한의 진정성에 무게를 싣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이 역시 눈속임에 불과했다. 2022년 3월부터 한미 군 당국은 북한이 풍계리 핵실험장 복구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평가했고, 올해까지 재활성화 작업들이 계속되고 있다. 다음 달 미국 대선 전후로 북한의 7차 핵실험 가능성이 높은데, 그 장소로 풍계리 3번 갱도가 유력하게 거론되는 상황이다. 국제사회가 북한에 농락당한 셈이다.

마찬가지로 북한은 2018년 11월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북한의 최전방 감시초소(GP)를 철수하겠다면서 10개소를 폭파하는 방식으로 파괴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지난해 11월 합의 파기를 선언한 북한은 곧장 각종 중화기를 배치하고 나섰다. 지하시설은 그대로 둔 채 지상의 초소만 폭파시켜 기만했을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정치권에서는 이를 두고 문재인 정부 당시 GP 불능화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지금까지의 사례가 북한이 ‘합의를 이행했다’는 근거로 내세우기 위한 폭파쇼였다면, 2020년 6월 16일 개성공단 내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무단 폭파한 것은 북한의 남북 단절 의지를 보여주는 상징적 퍼포먼스라고 할 수 있다.

당시 북한은 대북 전단을 문제 삼으며 그에 대한 조치로 공동연락사무소를 철폐하겠다고 발표했다. 이를 언급한 지 11일 만에 폭파를 감행했다. 북한은 폭파 장면을 담은 영상을 국내외에 대대적으로 보도하면서 남북관계 단절의 시발점으로 삼았다.

이날 경의선·동해선 폭파는 남북 간 완전한 단절을 상징하는 퍼포먼스로 풀이된다. 남성욱 고려대 통일융합연구원장은 “북한은 쇼킹한 폭파쇼를 통해 충격 요법의 효과를 노렸을 것”이라며 “남한과 국제사회는 물론, 북한 주민들에게도 남북 간의 단절을 확실히 각인시키려는 의도가 다분하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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