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독자의 기다림에 손 내미는 김애란의 장편소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2002년 제1회 대산대학문학상을 수상하며 하나의 현상으로 세계에 등장한 이후 김애란은 오직 네 권의 소설집, 한 권의 장편소설로만 독자를 만났다. 22세에 데뷔한 작가는 이제 23년차 소설가가 되었고, 이번 작품은 <두근두근 내 인생> (2011) 이후 13년 만에 출간되는 두 번째 장편소설이다. 알라딘 등 인터넷 서점에서 예약 판매를 하자마자 종합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출간 전부터 화제를 모았다.

김애란 작가는 지금까지 소설집 네 권과 장편소설 한 권을 선보였지만, 다섯 권 모두 여전히 널리 읽히며 책 제목만으로도 우리 각자에게 고유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드문 생명력을 지니고 있다. 활달한 유머와 상상력으로 앞을 향해 달려나가는 <달려라, 아비>(창비, 2005)부터 우리를 둘러싼 삶의 조건을 골똘히 응시하며 ‘안과 밖’의 시차를 포착한 <바깥은 여름>(문학동네, 2017)까지, 한자리에 멈춰 서지 않은 채 조금씩 자리를 옮겨가며 어렵게 얻어낸 이해의 결과물이 책 한 권 한 권에 담겨 있는 것이다.

김애란 작가는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서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뒤집어진 가족 소설, 성장 소설”이라고 소개하며 “무언가를 그만두는 과정에서 자기 이야기에 몰두하다 종래에는 타인의 이야기에 관심을 두게 되고 내 고통만큼 다른 사람의 슬픔도 상처도 이해하게 되는 과정을 더불어 그리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김 작가는 “실제로 소설을 쓴 기간은 3년 반 정도 된다. 다른 장편 소설을 계간지에 연재하기도 했지만 중단했다”라며 “헤매고 버린 시간도 있었는데 낭비라기 보다 치러야 했던 비용이자 새롭게 삶을 배우는 시간이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책의 제목인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소설 속 담임선생이 만든 ‘자기소개’ 게임을 가리킨다. 새 학기가 되어 학생들이 자신을 소개할 때 다섯 개의 문장으로 스스로를 표현하되 그중 하나에는 반드시 거짓을 포함시킴으로써 다른 학생들로 하여금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알아맞히게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한 학생이 ‘나는 핫도그 속 소시지는 안 먹고 빵만 먹는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을 따라 학교 담장을 넘은 적이 있다’와 같은 식으로 자신을 소개하면, 다른 학생들은 그중 과연 어떤 게 진실이고 어떤 게 거짓일지 추측함으로써 “그 과정 자체가 발표자에 대한 괜찮은 자기소개”(16쪽)가 되도록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하는 거짓말에는 단순히 누군가를 속이기 위해 재미삼아 함정처럼 파놓은 것도 있고, 현실에서는 불가능한 어떤 일을 그 문장을 통해서나마 이루고 싶은 마음으로 슬그머니 섞어놓은 것도 있다. 그리고 누군가는 “누가 들어도 명백한 거짓 같아서 모두 웃어넘길 수 있”(18쪽)기를 바라며 혼자서 오랜 시간 감당해야 했던 어떤 비밀을 내뱉기도 한다. 소설의 세 주인공이 처음 서로를 의식하는 계기도 바로 각자의 비밀을 알게 되면서다.

우선 지우. 최근 엄마가 세상을 떠난 뒤 지우에게 남은 존재라곤 반려 도마뱀 용식이뿐이다. 물론 엄마의 애인이자 한집에서 함께 산 지 삼 년이 된 선호 아저씨가 있지만, 남이나 다름없는 자신이 선호 아저씨에게 짐이 되리라고 여긴 지우는 겨울방학 동안 돈을 벌어 독립할 계획을 세운다. 환경에 예민한 용식이를 위험한 노동 현장에 데려갈 수는 없기에 지우는 잠시 동안 용식이를 친구에게 맡기기로 한다. 언젠가 자신에게 이성적인 호감을 비쳤던, 반 아이들이 ‘이상하다’고 수군대는 친구 소리에게.

그리고 소리. 어려서부터 그림을 그려온 소리는 몇 가지 기묘한 경험을 겪으면서 타인과 손을 잡는 상황을 최대한 피하게 되었다. 손에 펜이나 연필을 쥐고 있으면 사람들이 다가오지 않았기에 억지로라도 소리는 계속 그림을 그리게 되었다. 그러던 중 같은 반이지만 한 번도 제대로 대화해본 적 없는 지우에게서 문득 연락이 온다. 이번 방학 동안만 용식이를 맡아달라고 말이다. 소리는 작문 시간에 지우가 발표한 ‘눈송이’라는 글을 접한 뒤로 계속 그애에게 눈길이 간다. “막 엄청난 사랑에 빠졌거나 한 건 아니었”(67~68쪽)지만, 그날 수업시간에 “가난이란 하늘에서 떨어지는 작은 눈송이 하나에도 머리통이 깨지는 것”(85쪽)이라며 떨리는 목소리로 자신의 글을 읽어나가던 지우의 모습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기에 고민 끝에 지우의 부탁에 응하기로 한다.

마지막으로 채운. 일 년 전 여름밤 ‘그 일’이 벌어진 후, 엄마는 지금 교도소에 수감중이고 아버지는 병원에 입원해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당숙으로부터 “담당의 말로 네 아버지 몸 상태가 처음보다는 나아지고 있다더라”(28쪽)는 말을 듣고 채운은 몹시 불안해진다. 아버지가 깨어날까봐, 다시 돌아와 그날 있었던 일에 대해 폭로할까봐 두렵다. 그러던 중 언젠가 학교 운동장에서 엉겁결에 반려견 뭉치의 앞발을 잡은 소리가 한 말이 신경 쓰인다. 그때 소리는 마치 뭉치의 미래를 알고 있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 뭉치랑 최대한 많이 놀아주라고. 같이 좋은 시간 보내고.”(104쪽) 소리는 정말 누군가의 죽음을 볼 수 있는 것일까. 채운은 소리에게 ‘아버지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확인해봐줄 수 있는지 부탁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이중 하나는 거짓말>은 서로의 비밀을 엿본 이후 서로에게 호감을 비치기도, 서로를 의심하기도 하면서 세 아이가 만들어가는 우정과 거짓말, 그림과 죄에 대한 이야기를 펼쳐나간다.

<이중 하나는 거짓말>의 특별한 점은 중간중간 글로 풀어낸 지우의 만화가 삽입되어 그 자체로 극에 재미와 긴장감을 불어넣는 동시에 소설 속 인물들을 밀접하게 연결시키면서 예상치 못한 의미를 이끌어낸다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희망이나 사랑을 줄 만큼 충분히 강하지 못해”(8쪽) 자신만의 이야기를 짓기 시작한 지우는 몇 년 전 만화 카페에 단편 만화 <베리 베리 내 처지>를 올렸다가 조금의 인기를 얻게 된다.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며 가까워진 두 중학생이 느끼는 혼란과 소외를 스트로베리 아이스크림처럼 산뜻하게 다룬 그 만화로 사람들의 관심을 받은 지우는 이제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그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이야기로 풀어보고 싶은 욕구를 느낀다.

지우는 일 년 전, 그러니까 채운에게 ‘그 사건’이 일어난 바로 그 여름밤에 뜻밖의 광경을 목격한다. 채운의 아버지가 들것에 실려 구급차로 옮겨지고 얼마 안 돼 경찰을 따라 텅 빈 눈동자로 걸어나오는 채운의 엄마를 보게 된 것이다. 그리고 “혼란과 초조, 슬픔과 두려움이 섞인 얼굴”(48쪽)로 경찰차에 타려는 엄마를 다급히 부르는 채운의 목소리. ‘여자가 그랬다더라’라며 동네 주민들이 수군대는 걸 들으며 지우는 속으로 놀란다.

평소 지우는 자신과 같은 빌라 단지에 살면서도 가족과 화목하고 풍족해 보이는 채운에게 남몰래 부러움을 느껴왔기 때문이다. 자신의 엄마가 일하는 돼지갈빗집에 가족과 함께 외식을 하러 오는 채운을 볼 때면, 엄마에게 거들먹거리듯 행동하는 채운의 아버지를 볼 때면 그 감정은 단순한 부러움을 넘어 마음에 짙은 얼룩을 남겼다. “강렬한 경험이지만 여전히 해석이 잘 안 되는 몇몇 기억”(82쪽) 때문에 지우는 그걸 만화로 그리기로 결심한다. “한마디로 요약되지 않고, 직접 말했을 때보다 그림으로 그렸을 때 훼손되는 부분이 적은 어떤 마음”(같은 쪽)에 대해. 그렇게 지우는 만화 카페에 <내가 본 것>을 연재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연한 사건으로 그 만화를 보게 된 채운이 그날 밤의 비밀을 지우가 아는 것은 아닌가 하는 불안에 사로잡히면서 <이중 하나는 거짓말>의 이야기는 비밀과 거짓말을 동력으로 삼아 앞으로 나아간다. 하지만 이 소설이 누군가의 숨겨진 비밀을 밝히는 것 자체에 관심을 두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김애란은 ‘사건의 반전’으로 인해 일어나는 ‘정서의 반전’을 공들여 그려나간다. 사건의 진실을 알게 되는 과정은 인물들이 “오랫동안 억눌러온 어떤 감정이 무너져내리는”(208쪽) 과정과 포개져 있기 때문이다.

‘나에게 주어진 삶의 조건을, 그러니까 삶의 서사를 과연 바꿀 수 있을까. 흔히 보는 ‘서사 그래프’ 속 약동하는 선처럼 내 삶도 굵직하고 드라마틱한 흐름을 갖고 나아갈 수 있을까.’ 스스로를 둘러싼 세계에 의문이 생길 때 이야기는 쓰이기 시작한다. 이야기를 통해 질문을 던지기, 누군가를 오해하기, 자신이 몰랐거나 잊고 있던 뜻밖의 장면을 마주하기. 이것은 지우가 <내가 본 것>을 연재하는 동안 지우 자신에게, 그리고 그것을 보는 채운에게 일어나는 변화이면서 동시에 <이중 하나는 거짓말>을 따라 읽는 우리 자신에게 고스란히 일어나는 변화이다. 또한 그것은 이 소설이 지우가 그리는 만화에 적지 않은 분량을 할애하며 소설의 뼈대를 세우는 일에 각별한 관심을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할 것이다.

세 명의 아이가 방학을 지나는 동안 서로 멀리 떨어져 있음에도 깊은 영향을 주고받으며 “누군가와 악수하지 않고도 접촉하는 듯한 감각”(147쪽)을 느끼는 것처럼, 슬픔에 어려 있는 물기의 점성을 통해 서로가 밀착되는 것처럼, 김애란은 오랜 시간 한 자 한 자 눌러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써내려간 끝에 비밀과 거짓말, 그리고 슬픔이라는 마냥 아름답거나 밝지만은 않은 요소들로 서로에게 가까워지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완성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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