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오와 6주 후 낙태 금지 ‘도화선’…해리스 “트럼프 낙태금지법” 프레임 총공세
문화전쟁 재점화…미언론 “해리스, 선명성 내세워 낙태권 매개 지지층 복원 시도”
트럼프, ‘연방 대법원 자율 결정’ 로우키 행보…밴스 과거 강경발언 발목 잡힐라 고민도
대선을 3달여 앞둔 29일(현지시간)권 이슈가 대선 뇌관으로 다시 급부상했다.
조 바이든 미 대통령의 중도 하차로 대선 구도가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대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간 대결로 재편된 가운데 당장 해리스 부통령과 민주당 진영은 낙태 문제를 고리로 반(反) 트럼프 전선을 구축, 지지층 결집을 시도하며 판세 뒤집기를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대선으로 가는 길목에서 낙태 문제를 둘러싼 미국내 양대 세력간 문화전쟁도 재점화하는 양상이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 등 외신에 따르면 아이오와주는 이날부터 태아의 심장 박동을 감지할 수 있는 시점부터 낙태를 할 수 없도록 하는 법을 시행했다. 그전까지는 임신 22주까지 낙태가 합법이었으나 이제는 임신 약 6주 이후에는 낙태할 수 없도록 한 것이다.
이번 법 시행은 아이오와주 정부와 의회를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이 주도했다.
2022년 미국 연방 대법원이 연방 차원의 낙태 권리를 인정했던 ‘로 대 웨이드’ 판결을 폐기한 이후, 공화당이 다수인 주의회는 해당 법안을 통과시켰고 공화당 소속 킴 레이놀즈 주지사가 법안에 서명했다.
이 법의 시행이 공화당 입장에서는 악재가 될 수 있다는 게 외신들의 대체적인 분석이다. 미국 내에서 낙태권 옹호 여론이 낙태 금지 여론보다 우세하다고 평가되기 때문이다.
지난 2016년과 2020년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손을 들어준 아이오와주의 경우에도 낙태권 옹호 여론이 상대적으로 높다.
미국의 선거 예측 사이트 ‘270투윈’에 따르면 4년마다 격전지로 떠올랐던 아이오와는 1992년부터 2012년 사이 총 7번의 선거 가운데 6차례 민주당 편에 섰지만 2016년 대선 때 극적으로 변화를 겪으며 트럼프 전 대통령이 9% 포인트 차이로 승리를 거뒀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이 6% 포인트 격차로 이겼던 2012년에 비해 표심의 큰 진폭이 있었던 셈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20년 대선에서도 아이오와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을 8% 포인트 차이로 따돌렸다.
AFP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이번 대선에서도 아이오와에서 승리할 것으로 전망한다면서도 “낙태 이슈는 공화당에 여전히 어려운 문제로 남아있다”고 짚었다.
그러면서 이 이슈로 공화당은 “온건하고 중도적인 유권자들과 멀어질 위험이 있다”고 분석했다.
로이터 통신은 “공화당이 주도하는 주에서 제정된 낙태 금지법이 대다수 미국인에게 인기가 없다는 점이 증명됐다”며 “낙태는 올해 대선에서 민주당 후보들의 주요 캠페인 주제”라고 짚었다.
이러한 틈새를 활용, 민주당은 아이오와주의 낙태 금지법 시행을 대선 이슈화하는 데 올인하고 있다.
미 CNN 방송은 “해리스 부통령이 지지율을 높이는 가장 빠른 방법은 낙태 문제에 대해 그와 동의하는 유권자들을 견고히 하는 것일 수 있다”고 분석했다. 낙태 문제를 매개 삼아 바이든에게서 등돌렸던 비판적 유권자 그룹을 되찾아올 수 있다는 것이다.
해리스 부통령은 이날 동영상 성명을 통해 아이오와주의 낙태금지법에 ‘트럼프 낙태금지법’이라는 딱지를 붙이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투표”라고 강조하며 프레임 전쟁을 시도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 임명한 대법관 3명으로 인해 연방 대법원이 보수화, ‘로 대 웨이드’ 폐기 판결로 이어졌다는 점을 재차 부각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바이든 정부에서 낙태권 문제와 관련해 전면에서 트럼프 공격수 역할을 해온 해리스 부통령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바이든 대통령에 비해 낙태 문제에 있어 선명성을 내세워 차별화를 시도하려는 모양새다.
바이든 대통령은 처음에는 연방대법원의 로 대 웨이드 폐기 결정을 비판하며 낙태권을 옹호했지만, ‘낙태’라는 단어를 언급하는 것조차 주저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에 낙태권 지지 단체 등은 바이든 대통령이 낙태라는 표현을 피하며 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며 비판하기도 했다.
해리스 부통령의 등판 이후 대선 구도가 요동치는 상황에서 이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바이든 대통령과 다른 방식으로 낙태권을 수용하고 이 문제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받는 상대와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라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진단했다.
초강경 우파 공약을 쏟아내고 있는 트럼프 전 대통령은 ‘로우키’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그는 전국 단위의 낙태 금지를 공약하지 않고, 연방 대법원 판단의 취지에 맞게 각 주가 알아서 판단하도록 둬야 한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공화당은 이달 초 발표한 정강정책에서도 “헌법 14조에 따라 정당한 절차 없이 누구도 생명이나 자유가 부정돼선 안 되며 각 주는 이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법을 통과시킬 수 있다”고 명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공약을 확인했다. 연방 차원의 낙태 금지를 지지한다는 기존 정당정책의 표현은 40년 만에 삭제됐다.
그러나 공화당 부통령 후보 J.D.밴스 상원의원은 과거 강간 등의 경우에도 낙태는 정당화될 수 없다고 말하는 등 낙태 문제에 있어 초강경 발언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잠재적 부통령 러닝메이트 후보군 인사들도 지원사격에 나섰다.
그레첸 휘트머 미시간 주지사는 이날 펜실베이니아주 교회에서 열린 해리스 부통령 선거 유세에 “도널드 트럼프는 로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었다고 자랑했다”며 “그는 우리의 권리를 빼앗는 대법원 판사들을 임명했다. 그는 자신과 그의 친구들을 위해 세금을 깎았고 선거를 뒤집으려 했다”고 날을 세웠다.
프리츠커 일리노이 주지사도 엑스(X·옛 트위터)에 올린 글을 통해 “우리는 아이오와주 이웃들이 재생산의 자유를 지키고 필요한 모든 보살핌을 받도록 환영할 것”이라며 “이런 위험하고 부당한 법을 피하기 위해 당신이 노력하는 동안 우리가 여기에 있다는 점을 알아달라”고 썼다.
NYT는 “민주당은 올해 아이오와주 등지에서 낙태권 지지를 선거에서 유리하게 활용하려고 한다”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