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일(현지 시간)을 기점으로 100일 앞으로 다가온 미국의 대선은 인종과 세대, 성별과 이념이 부딪히는 세기의 대결이다. 아직까지는 공화당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유리한 형국이지만 앞으로 남은 3개월 동안 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애리조나·네바다 등 5개 경합주의 표심을 누가 얻느냐에 따라 대선의 승패가 갈릴 수 있다.
‘성난 백인’들이 많은 블루월(Blue Wall, 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을 두고 치열한 각축전이 벌어지는 가운데 민주당의 유력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공화당 텃밭’인 선벨트(애리조나·네바다)로의 진입을 노리고 있다. 누가 대통령이 되느냐에 따라 미국이 다시 고립주의를 택할지, 동맹과 함께 걸을지도 결정된다.
매직넘버는 270명… ‘공화 우세’ 벌써 251명
미국의 대선은 간접선거제로 전체 득표율이 아닌 선거인단 과반을 확보하는 후보가 승리한다. 538명의 선거인단이 50개 주와 워싱턴DC에 배분돼 있는데 이 가운데 매직넘버 ‘270(선거인단 270명)’을 확보하는 후보가 대권을 거머쥔다. 대부분의 주가 ‘승자독식제’를 택하기 때문에 각 주에서 한 표라도 더 얻은 후보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한다.
25일 미 선거 예측 사이트 270투윈의 ‘2024년 컨센서스’에 따르면 현재 공화당 우세 지역의 선거인단은 총 251명, 민주당 우세 지역의 선거인단은 226명이다. 미시간(15명), 펜실베이니아(19명), 위스콘신(10명), 애리조나(11명), 네바다(6명) 등에 나머지 선거인단 61명이 배정돼 있는데, 이들 지역은 누구를 지지할지 알 수 없는 최대 경합주로 꼽힌다. 미시간·펜실베이니아·위스콘신 3개 지역은 민주당의 전통적 강세 지역이어서 민주당의 상징인 푸른색을 따 ‘블루월’로 불린다. 하지만 이들 지역이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로 전락한 후 백인 노동자들의 분노가 커졌고 2016년 대선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을 지지했다. 2020년에는 조 바이든 대통령으로 돌아섰지만 올해에는 어떤 선택을 할지 알 수 없다. 남서부의 애리조나와 네바다는 ‘선벨트’로 불리는데, 도농이 혼재하고 인종이 다양해 표심도 왔다 갔다 하는 곳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현재 공화당 우세 지역의 선거인단을 모두 차지한다면 나머지 경합주에서 모두 지더라도 19명의 선거인단을 보유한 펜실베이니아 한 곳에서만 이겨도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은 블루월을 모두 승리하거나, 펜실베이니아를 사수한 상태에서 선벨트 지역을 잡아야만 대선에서 이길 수 있다. 현재로서는 어떤 경우의 수에서도 펜실베이니아에서 질 경우 해리스 부통령이 백악관에 재입성할 가능성은 없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은 2016년의 승리 방정식을 재가동하고 있다. 미국의 제조업 붕괴와 인플레이션, 이민 문제와 사회 혼돈의 책임을 조 바이든 행정부와 민주당에 돌리면서 블루월의 성난 유권자들을 다시 자극하는 방식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택한 부통령 후보 J D 밴스 상원의원은 이 같은 전략을 압축적으로 상징하는 인물이다. 러스트벨트인 오하이오의 가난한 가정에서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흙수저’ 밴스는 백인 남성들의 성난 표심에 호소하기 위한 맞춤형 부통령 후보다. 그는 공화당 부통령 후보 수락 연설에서도 “내가 어디에서 왔는지 결코 잊지 않는 부통령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은 블루월을 수성하는 동시에 선벨트의 여성과 젊은 층을 비롯해 유색인종 표의 결집을 노리고 있다.
미 정치 전문 매체 폴리티코는 “바이든이 승리로 가는 길은 러스트벨트를 통과하는 위험한 달리기였지만 해리스는 다르다”면서 “해리스는 선벨트 출신 정치인이며 여성과 라틴계 유권자들 사이에서 지지도가 높다”고 평가했다. 바이든 대통령이 후보일 때 공화당 우세로 확연히 기울고 있던 애리조나와 네바다에서 해리스가 반전의 모멘텀을 만들 수 있다는 분석이다.
뉴욕타임스(NYT)도 이날 시에나대와의 여론조사 발표 이후 “해리스는 바이든이 계속 어려움을 겪어온 30세 미만 유권자, 히스패닉 유권자들에게서 약 60%의 지지를 받았다”면서 “바이든이 밀려날 뻔했던 네바다·애리조나·조지아 등 남부 선벨트 주에 다시 집중할 수 있다”고 짚었다.
누가 이겨도 美 역사적 전환점
이번 대선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승리할 경우 그의 ‘미국 우선주의’가 집권 2기를 맞으면서 더욱 공고해지고 공화당 정책의 주류로 자리매김할 것으로 보인다. 자유시장경제를 비롯해 국제사회에서 미국의 역할 같은 레이건 시대 보수의 정통 가치는 공화당에서 설 자리를 잃게 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경제 분야에서는 고율 관세 등을 통해 무역장벽을 높이고 외교 분야에서도 군사 개입을 최소화하며 신고립주의로 나아갈 것으로 예상된다.
반면 해리스 부통령이 승리할 경우 미국은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이루지 못한 첫 여성 대통령의 역사를 쓰게 된다. 해리스 부통령은 외교안보 측면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동맹 중시’ 기조를 그대로 이어받을 것으로 관측되는 만큼 현 글로벌 안보 지형에도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미국의 초강대국 지위를 위협하는 중국에 대해서 만큼은 트럼프 정부나 해리스 정부 모두 더 강경 정책으로 치달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미 전문가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서울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