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코 원전 수주전에서 경쟁국들이 한국은 탈원전을 추진했던 나라이기 때문에 그쪽에 발주하면 안 된다고 했습니다.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체코 원전 사업에 정통한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가 23일 “원전 수출에 있어서는 한국 정부의 정책이 안정적으로 지속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체코 사례뿐만이 아니다. 한국이 체코에서의 성공을 발판 삼아 계속해서 원전 수출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차원의 원전 지지 결의안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국 내에서조차 원전 건설과 운용이 지속될지 모르는데 해외에서 한국 원전을 믿고 선택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현재 여야 분위기가 강대강으로 맞붙고 있지만 나중에라도 분위기가 나아지면 원전 결의안을 채택하면 좋을 것”이라며 “미국의 경우 의회가 국익과 관계되는 사안은 초당적으로 지지하는 안을 낸다. 우리도 그럴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원전 확대를 담은 11차 전력수급기본계획도 마찬가지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11차 전기본을 두고 “신규 원전 4기를 건설하겠다는 주장도 발표됐는데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밝혔다. 전직 정부 고위 관계자는 “국내에서 이렇게 원전에 대한 발목 잡기가 많고 반대하는데 해외에서 한국을 믿을 수 있겠느냐”며 “이념적 주장에서 벗어나 야당 차원이 부담스럽다면 최소한 국회 산업위 수준에서 중장기 원전 건설을 지지한다는 식의 안이 나오면 글로벌 마켓에서 한국의 원전 산업에 대한 신뢰가 크게 올라갈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실제로 세계 원전 시장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세계원자력협회에 따르면 현재 전 세계적으로 운영 중인 원전은 416기다. 인공지능(AI) 서버 등 전력 수요 급증으로 향후 엇비슷한 수의 원전이 더 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예상이다.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해서는 정치권이 한목소리를 낼 필요가 있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에너지 정책을 담당하는 산업통상자원부도 정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2050 중장기 원전 로드맵’이 대표적이다. 원전 로드맵에는 원전 건설·운영 관련 계획은 물론 소형모듈원전(SMR) 조기 상용화 방안, 원전 수출 목표 등이 담긴다. 이르면 3분기 중 로드맵의 초안을, 연내 최종안을 공개할 예정이다. 로드맵의 핵심 내용은 원전산업지원특별법 제정안에도 반영된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창의융합대학장은 “우리처럼 부존 에너지가 부족한 일본·독일·프랑스 등의 선진국은 에너지기본계획을 저마다의 방식으로 수립하고 있다”면서 “우리나라도 에너지정책기본계획의 부활이 최선책이었겠으나 여소야대 국면에서는 원전 로드맵이라는 차선책을 택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실천력을 확보하려면 (로드맵에) 원전을 활성화하기 위한 조직과 투입 예산에 대한 강력한 권고도 있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업계에서는 정부가 탄탄한 중장기 계획을 통해 SMR를 집중 육성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원자력기구에 따르면 SMR 표준 선점을 위해 기술 개발에 나선 글로벌 개발사는 올해 4월 기준 98곳이다. SMR은 주요 기기를 모듈화해 공장에서 제작한 후 현장 조립할 수 있도록 설계한 발전 용량 300㎿ 이하의 소형 원자로다. 안전성과 경제성·유연성 측면에서 모두 뛰어나 일각에서는 2050년 신규 원전의 50%가 SMR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백원필 한국원자력연구원 기획평가위원(전 한국원자력학회장)은 “체코 원전 수주로 유럽연합(EU) 내 교두보를 마련한 만큼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 역시 실현 가능한 사정권에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서울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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