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서 특별전…”오래 남는 배우 되고 싶어”
“아이를 낳고 2년 가까이 키우면서 가장 행복한 건 일상의 소중함을 알게 된 거예요. 예전엔 일이 전부였고, 그 속에서 고군분투했죠. 자신과 일을 분리하지 못한 채…. 그런데 요즘은 단순하게도 아이가 이유식을 한 끼 잘 먹어도 너무 행복한 거예요. 오늘 하루가 무사히 끝났다는 것만으로도 행복을 느끼면서 가치관도 달라진 것 같아요.”
배우 손예진(42)은 5일 경기도 부천의 한 백화점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출산과 육아로 얻게 된 삶의 변화를 이렇게 표현했다.
손예진이 공개석상에 나온 건 오랜만이다. 그는 2022년 동갑내기 배우 현빈과 결혼해 그해 말 아들을 낳은 뒤로 이렇다 할 작품 활동 없이 육아에 전념했다.
이번 기자회견은 전날 개막한 제28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BIFAN)에서 손예진의 연기 세계를 조명하는 특별전의 한 행사다. 특별전에선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2003)을 비롯해 손예진이 출연한 대표작 6편을 상영한다.
그는 “어떻게 보면 제 배우 인생의 ‘챕터 1’이 끝난 것 같은 느낌”이라며 “이제 ‘챕터 2’에 들어가는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특별전을 열어줘 과거를 돌아보고 다시 도약할 수 있는 계기를 얻은 것 같아 너무 감사하다”고 말했다.
손예진이 영화배우로 데뷔한 건 임권택 감독의 ‘취화선'(2002)에서다. 이후 이한 감독의 ‘연애소설'(2002)과 같은 작품에서 청순한 첫사랑의 대명사로 떠올랐다.
러나 손예진은 고정적인 이미지에 안주하지 않고 이재한 감독의 ‘내 머리 속의 지우개'(2004), 정윤수 감독의 ‘아내가 결혼했다'(2008), 황인호 감독의 ‘오싹한 연애'(2011), 이경미 감독의 ‘비밀은 없다'(2015), 허진호 감독의 ‘덕혜옹주'(2016) 등에서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하며 연기 세계를 확장했다.
“제가 20대에 배우 생활을 시작했을 때만 해도 여배우가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는 한정적이었어요. ‘연애소설’에서처럼 슬프고 가련한 느낌의 배역이 많았죠. 저는 그 이미지에 국한되고 싶지 않았어요. 다른 캐릭터에 욕심을 냈고,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고, 한계를 정하고 싶지 않았죠.”
그런 손예진도 이제 40대에 접어들었고, 결혼과 출산으로 개인적인 삶에도 큰 변화를 맞았다. 그가 배우 인생의 ‘챕터 2’에서 보여주고 싶은 연기는 어떤 것일까.
“앞으로도 열심히 일하겠지만, 과거처럼 스스로 너무 채찍질하면서 일하고 싶지는 않아요. 좀 더 넓고 여유 있게 연기하고 싶다는 생각이에요.”
손예진은 자신의 젊은 시절 영상을 보면 어떤 생각이 드느냐는 질문엔 “지금은 20대 초반의 풋풋한 모습으로 돌아갈 순 없지 않나”라며 “나이가 들어서는 정말 책임질 수 있는 얼굴을 가지고 싶다. 그게 더 어려운 목표인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최대한 다양하게, 더 많이, 그리고 더 길게 연기하면서 오랫동안 여러분 곁에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좋은 배우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관객에게 조금이나마 울림과 공감을 주고, 그 속에서 희로애락을 보여주면서 관객의 마음을 달래줄 수 있는 배우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답했다.
이번 특별전의 제목은 ‘독보적 손예진’으로 정해졌다. 이에 대해 손예진은 “독보적인 배우를 꼽는다면 이곳 무대가 모자랄 만큼 정말 많다”며 자기를 낮췄다.
스무살도 안 돼 연기의 길에 들어선 그는 배우의 꿈을 꾼 계기에 대해 “내성적이었고, 마음속에 너무 많은 감정이 있었는데 그걸 말로 설명하기 어려웠다”며 “연기자는 감정을 표출하는 직업인 만큼 한번 해보고 싶었다”고 돌아봤다.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로는 “오랫동안 힘들게 연기하다가 빛을 발하는 배우도 꽤 많지 않나”라며 “‘자기 꿈이라면 끝까지 한번 가보자. 인생은 한 번뿐이니까’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고 했다.
손예진은 2년여에 걸친 공백기를 깨고 박찬욱 감독의 신작에 출연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손예진은 “공식 발표 때까지 기다려달라”며 말을 아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