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사 빠졌던’ 보잉, 쇄신 약속…”생산 늦추고 안전관리 강화”

 올해 초 비행 중인 여객기에서 동체 일부가 떨어져 나간 사고에 대해 미국 항공기 제조업체인 보잉이 처음으로 언론 앞에서 잘못을 인정하고 전면적인 쇄신을 통한 재발 방지를 약속했다.

보잉은 지난 25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주 시애틀 남쪽 렌턴 지역에 있는 자사의 공장에 전 세계 10여개국 언론사 소속 기자 30여명을 초청해 ‘안전과 품질’ 문제에 관한 대책을 발표했다.

해당 사고가 발생한 이후 보잉 측이 이런 공개적인 자리를 마련한 것은 처음이다.

보잉은 지난 1월 5일 미 오리건주 포틀랜드 국제공항을 이륙한 알래스카항공의 보잉 737 맥스9 여객기가 약 5천m 상공을 비행하던 중 동체 일부가 뜯겨 나가면서 비상착륙 하는 사고를 겪은 뒤 큰 홍역을 치렀다.

항공 규제당국과 수사당국이 강도 높은 조사를 벌였고, 최근 검찰이 해당 사고와 관련해 법무부에 보잉을 형사 기소할 것을 권고했다는 언론 보도가 나오기도 했다. 미 법무부의 공식 발표는 아직 나오지 않은 상태다.

이날 경영진을 대표해 취재진 앞에 나온 엘리자베스 룬드 품질 총괄 수석부사장은 먼저 지난 1월 발생한 ‘동체 구멍’ 사고의 원인이 비행기 조립 과정에서 있었던 ‘볼트 누락’ 탓임을 인정했다.

앞서 미 국가교통안전위원회(NTSB)는 예비 조사 결과, 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비행기 좌측 ‘중간 비상구 도어 플러그'(MED plug)에서 고정용 볼트 3개가 빠져 있는 것을 확인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도어 플러그는 동체 중간에 비상구를 설치할 필요가 없을 때 출입문 대신 설치되는 일종의 덮개다.

당초 설계대로라면 이 덮개를 해당 부분에 끼워서 맞춘 뒤 여러 개의 나사(볼트)로 단단히 조여야 했지만, 이 나사가 완전히 빠져 있었다는 얘기다.

룬드 수석부사장은 “공급업체에서 발생한 결함이 우리 공장 전체에 걸쳐 이어졌고, 조립이 마감된 비행기가 공장을 떠날 때까지 이것이 바로잡히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공급업체인 스피릿 에어로시스템즈가 만든 기본 동체가 보잉의 렌턴 공장에 들어왔을 때부터 비상구 덮개 연결 부위의 리벳(고정용 대못)이 적합하지 않은 상태인 것을 발견했고, 보잉과 에어로시스템즈의 담당자들이 교체 여부를 논의했다.

그런데 이런 논의 과정에서 렌턴 공장 내 다른 조립 작업이 그대로 진행됐고, 결국 제조 라인의 맨 끝까지 이동했다. 이 시점에서 작업자들은 문제가 된 리벳을 교체하기로 결정하고 이를 위해 비상구 덮개를 열었는데, 리벳 교체 후 덮개를 다시 닫는 과정에 볼트가 빠진 것으로 추정됐다.

룬드 수석부사장은 “우리는 플러그(덮개)가 올바른 서류작업 없이 열렸다고 본다”며 “이는 규정된 절차를 준수하지 않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작업자들이 덮개를 열 당시 담당자가 이를 문서 기록으로 남겼다면 다시 덮개를 끼운 뒤 다른 직원들이 마무리 작업을 제대로 할 수 있었을 텐데, 기록 자체가 없었던 탓에 나사가 빠진 상태에서 곧바로 마감이 이뤄졌다는 얘기다.

룬드 수석부사장은 “일부 직원이 이런 조건에서 서류 한 장 제대로 작성하지 못했다는 사실과, 그 사고가 우리 모두에게 충격적이었다는 사실을 매우 투명하게 밝힌다”고 했다.

그는 회사 측이 지난 1월 5일 사고 발생 직후 내부 의견을 전사적으로 수렴하는 한편, 외부 전문가들에게 자문해 개선안을 마련했다고 밝혔다.

인력 교육과 훈련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제조 과정에서 직원들이 공유하는 계획과 절차를 가능한 한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으며, 공급업체에서 유입되는 결함과 자체적으로 생성되는 결함을 모두 제거하고 안전과 품질에 관한 문화를 전반적으로 개선하기로 했다.

룬드 수석부사장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생산이 위축됐다 재개되는 과정에서 신규 인력을 대량으로 채용하면서 이들에 대한 교육이 완벽하게 이뤄지지 않은 측면이 있었다고 털어놨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신참 직원들을 위한 재교육과 숙련도 평가 등 절차를 새로 도입하고 숙련된 선배 기술자의 일대일 멘토링 교육도 추가했다고 그는 설명했다.

또 제조 공정에서 결함이 해결되지 않은 채 방치돼 안전을 위협할 여지를 차단하기 위해 각 단계에서 제대로 완료되지 않은 채 다음 단계로 넘겨지는 작업(traveled work)을 최소화한다는 것이 회사 측의 목표다.

그는 “지난 몇 달간 우리의 목표대로 공장이 관리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생산 속도를 늦췄다”며 “그 결과 다음 단계로 넘겨지는 작업이 50% 이상 감소했다”고 말했다.

다만 보잉 측은 현재 생산 속도를 이전보다 얼마나 줄였는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룬드 수석부사장의 발표가 끝난 뒤 문답 시간에는 주로 미국 기자들 사이에서 질타에 가까운 날카로운 질문이 쏟아졌다. 이 자리에는 미 블룸버그 통신과 CNN·NBC·CBS 등 주요 매체 기자들도 참석했다.

2018년과 2019년 잇따른 보잉 737맥스 추락 사고 직후에도 비슷한 개선 대책을 발표한 바 있었다는 기자들의 지적에 룬드 수석부사장은 “당시에도 우리는 많은 조처를 했다”고 답했다.

이어 “우리는 어떤 분야의 문제를 발견하면 거기에 헌신하고 우리가 말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며 “이를 통해 우리가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고 나는 믿는다”고 덧붙였다.

앞서 2018년 10월 인도네시아 라이온에어 소속 보잉 737맥스가 추락해 탑승객 189명이 모두 숨졌고, 5개월 뒤인 2019년 3월에는 에티오피아항공 소속 보잉 737맥스가 소프트웨어 결함 등으로 이륙 6분 만에 추락해 157명 전원이 사망한 바 있다.

룬드 수석부사장은 이번 ‘동체 구멍 사고’와 비슷한 일이 다시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얼마나 확신하느냐는 질문에 “매우 확신한다”며 “우리가 취한 조치들이 이 공장을 떠나는 모든 비행기가 안전하다는 것을 보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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