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고통은 하마스 탓”…진보·보수 막론 동정여론 거의 없어
“전쟁을 시작한 쪽은 우리가 아니라 그들입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의 전쟁이 8개월 넘게 이어지는 가운데 이스라엘인 대부분은 가자지구의 참상을 알면서도 동정을 보이지 않는 분위기라고 뉴욕타임스(NYT)가 23일 보도했다.
이 매체는 이스라엘 각지에서 각계각층에 속한 여러 주민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어본 결과 이스라엘인들은 가자지구의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이 ‘하마스의 피해자’보다는 ‘전쟁 공모자’에 가깝다고 보는 모양새였다고 전했다.
애초 2006년 총선에서 무력투쟁을 주장하는 하마스에 권력을 쥐여 준 것이 가자지구 주민들이었고, 결국 작년 10월 7일 하마스가 이스라엘을 기습해 전쟁이 벌어진 만큼 둘을 완전히 별개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이스라엘인들의 인식이란 것이다.
이스라엘 도시 네티봇에서 작은 음식점을 운영하는 마이클 지그돈은 “10월 7일 공격을 가한 쪽은 우리가 아니었다”며 “이 전쟁을 원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누구인가”라고 말했다.
네티봇은 정치적·종교적 보수세가 강한 지역으로, 지난 2022년 선거에서 보수·극우 정당들에 92%의 표를 몰아줬던 곳이다.
그러나, 진보 성향 주민들도 전쟁을 시작한 쪽은 하마스이고, 가자지구 민간인의 고통도 하마스 탓이라는 시각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고 NYT는 지적했다.
실제, 진보적 분위기가 강한 지역으로 꼽히는 우림 키부츠 주민 레이철 리머(72)는 과거 가자지구 어린이를 위해 담요 구입비를 기부한 적이 있었지만 “이번에는 내 마음에 그들에 대한 측은심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성적으로는 불쌍히 여길 점이 많다는 걸 이해하지만, 감정적으로는 그렇게 할 수가 없다”고 설명했다.
우림 키부츠에 사는 농부 로니 바루치(67)도 가자지구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끔찍하고 고통스럽지만 이번 전쟁에서의 ‘배드 가이’는 이스라엘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현지 언론도 민간인 고통은 보도하지 않아
이러한 이스라엘인들의 정서는 현지 언론 보도에도 투영된다.
이스라엘 주류 매체들은 가자지구 민간인들의 고통에 대해선 거의 초점을 맞추지 않은 채 전쟁에서 사망한 이스라엘군의 장례식과 프로필 등을 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고 NYT는 전했다.
일각에선 이번 전쟁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각이 너무 급격히 변화했다는 불만도 표출되고 있다.
작년 10월 7일 하마스의 기습으로 1천200명 가까운 이스라엘 민간인과 군인, 외국인이 살해되고 250여명이 납치됐는데도, 이스라엘이 반격에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국제여론이 거꾸로 뒤집혔기 때문이다.
현지 싱크탱크 이스라엘민주주의연구소(IDI)의 정치학자이자 여론 전문가인 타마르 헤르만은 “전 세계에 있어서는 (하마스의 기습 이튿날인) 10월 8일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스라엘인 일부는) 가자 주민이 (하마스의 만행에도) 반성을 보이지 않을 뿐 아니라 전 세계가 이스라엘인의 고통을 깎아내리고 있다고 느낀다”고 말했다.
하마스의 통치를 받는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달 23일까지 이번 전쟁으로 목숨을 잃은 가자지구 팔레스타인인의 수가 3만7천598명에 이른다고 집계했다.
가자지구 보건부는 사망자에서 하마스 등에 속한 무장대원이 차지하는 비중이 어느 정도인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다만 유엔 등은 팔레스타인인 사망자의 절반 이상이 하마스와 무관한 여성과 미성년자일 것으로 보고 있다.
이스라엘군(IDF)은 가자 지상전이 시작된 작년 10월 27일부터 이달 24일까지 모두 313명의 이스라엘군 병사가 숨졌고, 665명의 부상자가 발생했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