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우크라이나에 제공한 미국 무기의 러시아 본토 공격 허용 여부를 ‘번개 같은 속도’로 결정했다는 자화자찬이 나와 빈축을 사고 있다.

이미 올해 초부터 우크라이나 제2 도시 하르키우가 위협받는 상황이란 경고가 잇따랐는데도 러시아와 서방의 전면전으로 확전할 수 있다며 줄곧 외면하다 뒤늦게, 그나마도 불충분한 대책만 내놓은 상황이어서다.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미 정부가 마침내 우크라이나에 제한적 무기로 러시아 본토에 대한 제한적 타격을 할 수 있도록 허락했지만, 너무 부족하고 너무 늦었을 수 있다”며 1일 이같이 비판했다.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13일 미국에 미국산 무기의 러시아 본토 공격 제한을 풀어달라고 공식 요청했고, 바이든 행정부는 17일 뒤인 같은달 30일 미제 무기를 사용한 러시아 본토 공격을 일부 허용했다.

그러나 러시아 본토에서 불과 수십㎞ 거리인 하르키우는 그사이 우크라이나군이 지닌 옛 소련제 무기가 닿지 않는 국경 너머에서 러시아가 일방적으로 쏟아붓는 활공폭탄과 미사일에 쑥대밭이 됐다.

WP는 “하르키우 지역에서 러시아의 가혹한 공격을 헤쳐나온 우크라이나인들에게 이 17일간의 기다림은 전장상황 변화를 족족 따라잡지 못하면서 우크라이나인들의 목숨을 희생시켜 온 백악관을 상징하는 것이었다”고 꼬집었다.

러시아군은 올해 3월부터 하르키우와 가까운 러시아 국경지대에 대규모 병력을 집결시키기 시작했고 우크라이나와 미국 내에선 조만간 대대적 공세가 시작될 것이란 우려가 커져왔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공화당 강경파가 우크라이나 원조 예산안 처리를 가로막고 있던 민감한 상황 때문에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발만 구르던 우크라이나는 지난달 10일 공세가 시작되고서야 미국산 무기 사용 제한 해제를 공식 요청했다.

심각성을 인지한 백악관 당국자들은 15일 바이든 대통령을 만나 미제 무기 사용 제한을 완화한다는 결정을 끌어냈으나, 바이든 대통령은 어느 수준이 적절할 지에 대한 ‘사전점검’을 원했고 여기에만 2주가 추가로 소요됐다고 WP는 보도했다.

바이든 정부로서는 우크라이나를 전력으로 지원하면서도 이 전쟁이 ‘3차 세계대전’으로 확전하는 것은 용납하지 않겠다는 정책기조가 확고한 까닭에 혹시 모를 위험성을 사전에 파악하길 원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미국 정부에서 17일 만에 그런 결정을 내놓았다는 건 ‘번개 같은 속도’라고 익명을 요구한 미 정부 고위 당국자는 말했다

하지만 약 80㎞의 사정거리를 지닌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과 야포 등은 제한을 풀지만 사거리가 300㎞에 이르는 장거리 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는 여전히 러시아 본토 공격에 쓸 수 없다는 미국 측의 결정은 너무 늦었고, 그나마도 효과가 크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평가된다.

하르키우를 위협 중인 러시아군 비행장이나 미사일 발사대 대부분이 하이마스의 사거리 바깥에 위치한 까닭이다. 가령, 하르키우에 활공폭탄을 퍼붓는 러시아군 전투기와 폭격기가 이착륙하는 러시아 보로네시 말셰보 공군기지는 우크라이나 국경에서 160㎞ 거리에 위치해 있다고 WP는 지적했다.

이달 초 하르키우 인근 국경마을 보우찬스크를 지키다가 전멸에 가까운 피해를 봤다는 우크라이나군 제57여단 산하 정찰대대 지휘관 데니스 야로슬라우스키는 “우리에게 (국경 너머의) 지휘부와 무기고, 병력집결지 등을 때릴 기회가 있었다면 상황은 완전히 달랐을 것”이라고 말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2일 싱가포르 아시아 안보회의(샹그릴라 대화) 연설에서 미국이 하이마스의 러시아 본토 공격 제한을 풀어준 데 감사하지만 이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그는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가 대응할 체계도 없고 (서방무기 사용) 허락도 받지 못해 반격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여러 자국내 비행장을 공격에 쓰고 있다”고 말했다고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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