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전쟁 개입과 관련한 ‘빗장’을 또 하나 푼 것으로 미국 언론에 보도돼 귀추가 주목된다. 미국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30일 우크라이나가 일부 러시아 영토 안에서 미국 제공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바이든 행정부가 비밀리에 허락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무기를 쓸 수 있는 러시아 영토는 러시아와 우크라 국경 지역에 위치한 하르키우와 가까운 지역으로 국한되며, 무기 사용 상황도 러시아의 공격에 맞선 반격 목적으로만 제한된다.
폴리티코는 하르키우를 겨냥해 발사된 러시아 미사일을 요격하는 상황, 우크라이나 땅에 폭탄을 떨어뜨리는 러시아 폭격기를 격추하는 상황 등에서 미국이 제공한 로켓과 로켓 발사대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시했다.
바이든 행정부는 여전히 장거리 미사일과 같은 무기를 사용해 러시아 본토 깊숙한 지역을 타격하는 데는 미국 무기를 쓸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그러나 보도 내용대로라면 그동안 우크라이나가 자국 영토 안에서 러시아의 공세를 방어하고 영토 안에서 러시아군을 몰아내는 데만 미국 무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하던 데서 제한적이긴 하지만 중요한 전환을 한 셈이었다.
미국으로선 지난 3월에 러시아가 점령한 크림반도 깊숙한 곳까지 타격할 수 있는 사거리 300㎞의 신형 에이태큼스 지대지 미사일을 오랜 망설임 끝에 우크라이나에 공급한 데 이어 또 하나의 빗장을 푼 것일 수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2022년 2월 우크라이나전쟁 개전 이후 대규모 무기 지원을 하면서도 미·러 두 핵보유국 간의 직접 충돌로 연결될 수 있는 수준의 개입은 하지 않는다는 기조를 유지해왔다.
무기는 제공하되 파병하지 않는다는 원칙과, 미국이 제공한 무기는 우크라이나 영토 안에서만 쓰도록 한다는 원칙이 대표적이었다.
그랬던 미국이 점점 우크라이나의 요구를 들어주는 방향으로 빗장을 풀고 있는 것은 올해 들어 러시아에 유리하게 돌아가는 전황과, 11월 미국 대선이 5개월밖에 남지 않은 상황을 두루 감안한 행보로 풀이된다.
지난달 608억 달러(약 83조원) 규모의 대(對)우크라이나 추가 군사지원안이 천신만고끝에 미국 의회를 통과하긴 했지만 공화당내 트럼프 지지층을 중심으로 우크라이나 지원에 대한 피로감이 커진 상황이다.
그런 터에 미국 대선을 앞두고 우크라이나가 패전하거나 결정적으로 몰리는 상황에 처하는 것은 바이든 행정부 입장에서는 상대 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손에 중요한 공격 무기를 쥐여 주는 것과 다름없다는 판단을 했을 수 있어 보인다.
최소한 현재의 전황을 유지하거나 우크라이나가 점령당한 영토를 일부 되찾은 상황에서 선거를 치르기 위해서는 미국 무기의 활용 범위에 대한 제한을 일부 풀어줘야 한다는 것이 바이든 대통령의 판단일 수 있다.
우크라이나의 공격 능력을 확대해 러시아의 부담을 지금보다 한층 더 키우지 않고서는 우크라이나 전쟁의 현상 유지조차 어렵다는 위기의식 하에 바이든 행정부로서는 러시아의 강력한 반발과 확전 가능성을 무릅쓴 고육책을 쓰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관건은 러시아의 대응 수위다.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 외무부 대변인은 30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우크라이나가 서방 무기로 러시아의 민간 시설을 공격할 경우 러시아군이 ‘비례적인 대응’을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러시아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국가에 대한 보복 공격에 나설 경우 전쟁의 양상은 새로운 확전 국면으로 전개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러시아가 고강도 대응에 나설 경우 이미 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등 ‘2개의 전장’에 관여하고 있는 바이든 행정부의 고민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