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5기 집권을 시작한 지 9일 만에 첫 해외 일정으로 중국을 국빈방문해 미국을 위시한 서방과의 대립에 맞선 양국의 밀착을 다시 한번 과시했다.

16일 새벽 베이징에 도착한 푸틴 대통령은 17일 중국 헤이룽장성 하얼빈에서 숨 가쁜 일정을 소화한 뒤 기자회견을 끝으로 이틀 일정을 마무리했다.

푸틴 대통령은 베이징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서로를 ‘친구’라고 부르며 끈끈한 결속을 자랑했다.

두 정상은 16일 아침부터 밤까지 세 차례에 걸쳐 회담하며 양국 관계 발전과 국제 정세 등 다양한 주제를 논의했다. 타스 통신은 푸틴 대통령의 방중 첫날 두 정상이 12시간 이상을 붙어 있었다고 보도했다.

특히 16일 세번째 일정이었던 비공식 회담은 중국 당정 지도부의 집무실이 있는 베이징 중난하이(中南海)에서 열렸는데 두 정상은 공원을 산책한 뒤에 차를 마시는 친밀한 분위기에서 대화했다.

비공식 회담으로 푸틴 대통령의 베이징 일정이 끝나자 두 정상은 포옹하며 인사했다. 푸틴 대통령의 포옹 장면은 종종 포착되지만 시 주석은 이례적이다. 그만큼 공고한 양국 밀착 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된 행동으로 보인다.

지난 7일 취임식을 통해 집권 5기를 시작한 푸틴 대통령은 새 내각을 구성하자마자 새로 임명된 부총리·장관을 대거 대동하고 중국으로 날아갔다.

시 주석은 최근 미국과 유럽에서 러시아를 지원하지 말라는 압박을 받고 있음에도 푸틴 대통령에게 레드카펫을 깔아주며 환대했다.

3년째 이어지고 있는 우크라이나 ‘특별군사작전’으로 서방과 대립하면서 경제 제재를 받는 러시아에 중국은 외교·경제적 숨통 역할을 하고 있다.

지난해 양국 교역 규모는 2천200억달러(중국은 2천400억달러로 발표)를 넘어서며 역대 최고를 기록했다. 서방 제재 이후 양국의 경제 협력이 커진 영향이다.

두 정상은 공동성명에서 경제, 무역, 에너지, 농업, 투자, 정보통신기술, 인공지능(AI), 관광 등 분야에서 더욱 협력하기로 했다.

푸틴 대통령은 17일 찾은 하얼빈에서도 경제 협력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지난해의 교역 규모가 “한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특히 우주기술과 로켓·미사일 연구로 유명한 하얼빈공과대학을 방문해 우주 분야 협력을 강조하기도 했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은 공동성명에서 미국에 대해 “자신의 절대적인 군사적 우세를 유지하기 위해 전략적 안정을 파괴하려는 기도에 엄중한 우려를 표한다”며 한목소리로 견제했다.

우크라이나 상황에 대해서도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의 해법을 높이 평가했다.

공동성명에서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문제에서 객관적이고 공정한 중국의 입장을 지지하고, 유엔 헌장의 충분하고 완전한 준수라는 기초 위에서 위기를 해결해야 한다는 관점에 찬성한다”고 밝혔다.

또 “중국이 정치·외교적 경로를 통해 우크라이나 위기 해결에 건설적인 역할을 하는 것을 환영한다”며 ‘근본 원인 제거’를 강조하는 중국의 입장을 지지했다.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비판 여론을 버텨야 하는 러시아로선 국제무대에서 방패이자 대변자 격인 중국을 우군으로 유지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

시 주석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과 공동 제안했던 파리 올림픽 기간 휴전에 대해 푸틴 대통령에게 설명했다. 푸틴 대통령은 시 주석과 이 문제를 논의했다고 밝혔으나 휴전 이행 여부는 명확히 언급하지 않았다.

외신에서는 공동성명에 ‘무제한 협력’이 명시되지 않은 것에 주목하기도 했지만, 러시아 관영 리아노보스티 통신은 “러시아와 중국의 파트너십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하다”고 평가했다.

푸틴 대통령과 시 주석은 양국을 넘어 북한까지 밀착 관계를 확대했다.

공동성명에서 “양국은 미국과 그 동맹국의 군사 영역에서의 위협 행동과 북한과의 대결 및 유발 가능성 있는 무장 충돌 도발로 한반도 형세의 긴장을 격화하는 것에 반대한다”고 선언한 것이다.

이로써 한미일 대 북·중·러 신냉전 구도가 더욱 굳어지는 게 아니냐는 전망도 나온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9월 러시아 극동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상회담하고 김 위원장의 북한 초청을 수락한 상태로 올해 북한 답방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번 방중의 마지막 행선지인 하얼빈이 지리적으로 북한과 매우 가까운 만큼 푸틴 대통령의 ‘깜짝 방북’ 가능성까지 점쳐지기도 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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