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인들의 가계 부채가 천문학적인 수준에 도달했다. 미국 경제는 탄탄하다고 하지만 중산층과 서민층은 여전히 높은 인플레이션과 금리로 인해 부채 압박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특히 저소득층은 카드빚을 내서 간신히 연명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월가와 경제학자들은 가계 부채 및 연체율 증가가 중·장기적으로 미국 경제 성장을 위협할 수 있는 새로운 ‘뇌관’이 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15일 월스트릿저널(WSJ) 등 언론들에 따르면 뉴욕 연방준비은행(연은)은 가계부채·신용에 관한 분기별 보고서에서 올해 1분기 가계부채가 17조6,900억달러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년 동기 대비 3.8% 증가한 것으로, 잔액 기준 사상 최대다.

가계부채는 최근 분기별로 계속 최다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가계부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문은 주택 부문으로 전체의 70%가 넘는 부채가 주택담보대출(모기지) 등 주택 관련 부채다. 올해 1분기 모기지 부채만 160억달러가 추가로 발생했는데, 이는 2008년 이후 가장 큰 분기별 증가 폭이다. 또 전국 주택 소유자들은 약 5,800억달러의 미결제 모기지 잔액을 보유하면서 15년 만의 최고 기록을 세웠다.

경제학자들이 특히 중시하는 신용카드 부채는 1분기에 1조1,200억달러로 집계됐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시작된 2020년 1분기 대비 약 25% 증가한 규모다. 무엇보다 이 기간 신용카드 연체율이 대폭 올라 가계에 부담을 주고 있다.

최소 30일 이상 카드 결제 지연을 기준으로 한 신용카드 연체율은 8.93%로 2011년 1분기 이후 13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90일 넘는 심각한 연체에 해당하는 비율도 6.86%에 달했다.

뉴욕 연은은 “카드 연체 증가로 일부 가계에서 재정난이 심각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특히 저소득층이나 카드를 한도까지 이용하는 소비자들 사이에서 연체가 급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들 소비자들이 카드를 물건 구입이 아닌 사실상 생활비를 보충하고 있는데 쓰고 있다는 분석이다. 그러나 이는 연 20%대 크레딧카드 이자율을 부담해야 하는 것을 감안할 때 원금과 이자 부채 규모가 늘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이고 영원히 부채의 늪에 빠질 수 있다는 경고다.

주요 카드 발행사의 실적에서도 미 소비를 견인하는 고소득층과 빚에 쫓기는 저소득층의 양극화는 극명하게 드러났다. 부유한 고객이 많은 아메리칸익스프레스의 1분기 순이익은 전년 대비 34% 증가한 24억3,700만달러로 집계됐다. 카드 이용은 늘었지만, 30일 이상 카드 연체율은 1.3%에 그쳤다.

반면 신용등급이나 소득이 낮은 소비자를 폭넓게 다루는 캐피털원의 경우 1분기 30일 이상 연체율이 4.5%에 달했다. 전년 대비 0.82%포인트(p) 늘어난 수치다. 중산층과 서민층 고객이 많은 뱅크오브아메리카(BOA)와 웰스파고 등도 연체율이 증가하고 있다.

레이먼드제임스인베스트먼트 매트 오튼 수석 투자전략가는 “미국 소비는 전반적으로 밝고 강세가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본다”면서도 “연체 대부분을 차지하는 하위 소비자층은 임금 상승 둔화 등으로 인해 앞으로도 어려운 상황이 계속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인플레이션 타격으로 코로나19 사태 당시 쌓아두었던 대부분의 잉여 저축이 바닥난 상태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연방·주정부의 코로나19 지원금과 세재 혜택도 모두 중단된 상태이다.

<미주한국일보 – 조환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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