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파생금융상품 마진콜 사태로 월가를 뒤흔든 한국계 미국인 투자가 빌 황(한국명 황성국)의 사기 혐의 사건에 대한 형사재판이 오늘 뉴욕 남부연방법원에서 본격적인 심리 절차를 시작했다고 블룸버그 통신이 보도했다.
앞서 뉴욕남부지검은 지난 2022년 4월 아케고스 캐피털 매니지먼트(이하 아케고스) 설립자인 황씨를 사기 등 혐의로 기소했다.
검찰은 황씨가 금융회사들을 속여 거액을 차입한 뒤 이를 자신들이 보유 중인 주식에 대한 파생상품에 투자함으로써 주가를 인위적으로 조작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던 중 투자 종목의 주가가 하락하자 증거금을 추가로 납부해야 하는 마진콜이 발생했고, 투자은행 골드만삭스가 발 빠르게 담보주식을 블록딜로 내다 팔면서 손실이 확산했다.
아케고스 마진콜 사태로 투자은행들이 입은 손실은 100억 달러(약 13조6천억원)에 달했고, 아케고스 사태로 55억 달러 규모의 손실을 본 크레디트스위스(CS)는 이 충격 여파로 위기설에 휩싸이다가 결국 자국 경쟁사인 UBS에 인수됐다.
검찰은 이날 모두진술에서 “황씨가 위험을 감수한 것은 더 많은 돈과 성공, 권력을 원했기 때문”이라며 “커튼이 걷혔을 때 그의 사업은 ‘카드로 만든 집'(house of cards·불안정한 계획)이자 거짓으로 드러났다”라고 말했다.
반면 황씨 측 변호인인 배리 버크 변호사는 “그는 자신의 투자에 용기와 신념을 가졌다”라며 검찰 주장을 반박했다.
사기 목적이나 주가조작 계획을 가진 게 아니라 투자대상 주식의 가치를 믿고 투자한 가치투자자였다는 것이다. 그는 “황씨가 고객 돈이 아닌 자기 돈으로 투자했다”고도 강조했다.
버크 변호사는 황씨가 미국의 투자자 필립 피셔의 투자 고전서 ‘위대한 기업에 투자하라’를 직원들에게 읽으라고 권유했으며, 그의 투자 기법도 해당 책의 조언에 따른 것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버크 변호사는 또 황씨가 뉴저지주 집에서 사치와는 거리가 먼 생활을 해왔으며, 평소 자신이 설립한 재단을 통해 자선 기부를 많이 해왔다고 소개했다.
황씨 부친은 목사였으며, 황씨 본인도 독실한 기독교 신자라고 블룸버그는 전했다.
아케고스는 마진콜 사태 직전 비아콤CBS(현 파라마운트) 주식에 대규모 베팅을 했는데, 버크 변호사는 이에 대해 “황씨는 콘텐츠가 왕이라 믿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2021년 3월 21일 비아콤CBS 주가의 갑작스러운 하락은 비아콤CBS의 증자 소식 이후 이뤄졌는데, 버크 변호사는 이를 두고 ‘블랙스완'(발생 가능성이 매우 작은 사건)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황씨는 해당 주가 급락의 유발자가 아닌 피해자였다는 것이다.
당시 비아콤CBS의 급락은 아케고스 마진콜 사태를 촉발한 직접적인 단초가 됐다.
이번 재판을 두고 월가가 비상한 관심을 보이는 가운데 검찰이 황씨의 혐의를 입증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고 앞서 로이터 통신은 전했다.
황씨는 캘리포니아주립대 로스앤젤레스(UCLA) 캠퍼스와 카네기멜런대 경영대학원(MBA)을 나와 2001년 헤지펀드 타이거 매니지먼트를 이끈 유명 투자자 줄리언 로버트슨의 도움으로 ‘타이거 아시아 매니지먼트’를 출범했다.
황씨의 펀드는 월가의 아시아 전문 최대 헤지펀드 중 하나로 성장했지만, 2012년 홍콩 투자와 관련해 내부자 거래 혐의로 수사를 받았고, 결국 4천400만달러를 지급하고 사건을 종결해야 했다. 이후 2013년 그는 개인투자회사인 아케고스를 설립했다.
검찰은 이어 “아케고스는 부패의 핵심이 있었는데 이 소규모 그룹은 황씨가 지시하는 것이라면 거짓과 속임수를 포함해 모든 것을 했다”며 “황씨는 주식을 더 비싼 값에 사기 위해 지속해서 은행에 돈을 빌리러 가야 했다”라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