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전쟁 반대 시위로 몸살을 앓던 미국 대학가에서 이달 들어 속속 졸업식이 열리고 있는 가운데, 상당수 대학은 졸업식에서도 반전 시위의 여파를 피해가지 못하고 있다.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12일 전 열린 동부 듀크대 졸업식에서는 약 40명의 학생들이 행사장에서 집단 퇴장했다.
‘자유 팔레스타인’을 소리 높이 외치며 행사장을 빠져나간 이들은 팔레스타인 국기를 학사모에 그려넣고, 망토처럼 걸치거나 흔드는가 하면,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주로 쓰는 흑백 체크무늬의 카피예를 쓰기도 했다.
이들의 집단 퇴장은 유명 코미디언 제리 사인펠드가 명예 학위를 받을 때 이뤄졌다. 사인펠드는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의 유대인에 대한 지지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인사다.
사인펠드의 연설이 이어지자 자리를 박차고 나간 졸업생들은 행사장 밖에서 “(진실을)밝혀라, (친이스라엘 기업에 대한)투자를 멈춰라, 우리는 멈추지 않을 것이다”라는 반전 구호를 외쳤다.
에머슨대에서는 졸업생 5명 중 1명꼴로 카피예를 쓰거나 친팔레스타인 시위용품을 준비했다.
이들은 무대에서 졸업가운을 벗으며 항의 의사를 드러내는 방식 등으로 개별 시위를 벌였다. 졸업가운 대신 가자 전쟁 관련 빨간 글씨가 적힌 하얀 옷을 입은 한 졸업생은 졸업장을 던져버리고선 붉게 칠한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생중계 방송 카메라 앞에 팔레스타인을 상징하는 수박을 그린 손을 갑자기 내보이는 이도 있었다.
캘리포니아에 있는 포모나 컬리지의 경우 시위대가 졸업식장에 야영 텐트를 설치하자 아예 행사장을 옮겼다.
앞서 11일에는 유씨버클리에서 수백명의 학생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구호를 외치며 졸업식을 방해하기도 했다.
버지니아커먼웰스대에서는 공화당 소속 글렌 영킨 버지니아 주지사가 연설하는 동안 졸업생 60여명이 퇴장했고, 위스콘신대에서는 일부 졸업생이 총장의 연설 도중 등을 돌리는 방식으로 항의를 표현했다.
시위대의 캠퍼스 건물 점거에 경찰이 진압 작전으로 미 전역 57개 대학에서 시위대 2천900여명을 연행하는 등 긴장이 최고조에 달했던 대학가 반전 시위의 여진이 이어지고 있긴 하지만, 미국 대학의 졸업식은 대체적으로는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되는 모습이다.
AP통신은 “이번 주말 졸업식은 대체로 평화롭게 진행됐다”고 평가했다.
한편으로는 아예 졸업식이 취소되거나, 캠퍼스 내에서 농성 중인 시위대와 대학 당국 간 협상이 잘 풀리지 않는 대학들도 여전히 존재한다.
이번 캠퍼스 반전시위의 ‘진앙’으로 불리는 뉴욕 컬럼비아대의 경우 일찌감치 대학 전체 졸업식을 취소하고 단과대 차원의 개별 행사로만 치르기로 했다.
USC의 경우 공개적으로 팔레스타인 지지를 표명한 졸업생 대표에게 보안상의 문제로 졸업식 기조연설을 할 수 없다는 입장을 전달했고, 결국 졸업식을 취소했다.
졸업이 1개월여 남은 시카고 드폴대에서도 대학 당국과 캠퍼스를 점거한 채 농성 시위를 벌이는 학생들 간의 협상이 교착에 빠져 졸업식 진행 여부가 불투명한 상황인 것으로 전해졌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