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빈의 베토벤 생가 내부, 연합뉴스 자료사진
위대한 음악가 루트비히 판 베토벤이 작곡가로서 치명적인 청각 장애뿐 아니라 각종 질병에 시달린 것이 결국 납 중독 때문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
이는 베토벤이 납에 중독되지 않았다는 1년 전 연구 결과를 뒤집는 것이다.
산호세 주립대 베토벤 연구소의 윌리엄 메리디스 원장과 베토벤의 머리카락 뭉치를 보유한 호주 사업가 케빈 브라운씨, 메이요 클리닉 연구실장인 폴 자네토 박사 등 연구팀은 6일(현지시간) ‘임상화학’ 저널에 게재한 논문을 통해 이러한 내용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고 미 일간 뉴욕타임스가 보도했다.
이번 연구는 중금속 분석 장비를 갖춘 메이요 클리닉의 특수 실험실에서 브라운 씨가 보유한 베토벤 머리카락 뭉치 2개를 대상으로 진행됐다.
실험 결과 베토벤의 머리카락 뭉치 하나에서는 1그램(g)당 258마이크로그램(㎍)의 납이 함유돼 있었고, 또 다른 뭉치에서는 1g당 380㎍의 납이 검출됐다. 일반 머리카락의 납 함유량이 1g에 4㎍ 미만이니 100배 가까운 수준의 납이 나온 것이다.
자네토 박사는 “이 결과는 베토벤이 고농도의 납에 노출돼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며 “이는 지금까지 내가 본 모발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라고 말했다.
아울러 비소는 정상 수치의 13배, 수은은 정상 수치의 4배로 함유량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독성 물질에 정통한 데이비드 이튼 워싱턴대 명예교수는 “베토벤의 위장 문제는 납 중독 증상과 정확히 일치한다”고 했으며, 베토벤의 청각 장애에 대해서도 “다량의 납이 신경계에 영향을 미쳐 청력을 손상시켰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다만, 이튼 명예교수는 “만성적인 (납 성분) 복용이 사인이 될 정도로 충분한지는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납 중독 전문가인 제롬 은리아구 미시건대 명예교수는 베토벤이 살았던 19세기 유럽에는 납이 와인과 음식뿐 아니라 의약품과 연고에도 사용됐다고 설명했다.
베토벤의 머리카락 뭉치에서 고농도의 납이 검출된 것은 값싼 와인이 원인이었을 가능성도 있다. 당시 단맛이 나는 ‘납 설탕’을 품질이 떨어지는 와인의 맛을 개선하기 위해 첨가했으며, 납땜한 주전자에 담겨 숙성된 와인에 납이 녹아들었을 수도 있다고 은리아구 명예교수는 전했다.
베토벤 연구소 메레디스 원장에 따르면 베토벤은 하루에 한 병 정도의 와인을 마실 정도로 중독돼 있었고, 말년에는 건강에 좋다고 믿으면서 와인을 더 많이 마셨다.
사망하기 직전 친구들은 베토벤에게 숟가락으로 와인을 떠서 마시게 했다고 한다. 베토벤의 비서이자 전기 작가인 안톤 쉰들러는 “그는 숨을 거둘 때까지 뤼데스하임 와인을 몇숟가락씩 마셨다”고 회상한 바 있다.
베토벤은 사망하기 전 출판사로부터 12병의 와인을 선물로 받기도 했는데, 이를 마실 수 없다는 걸 안 베토벤은 “애석하다. 애석하다. 너무 늦었다”고 탄식했다고 전해진다.
아울러 베토벤은 수년간 많은 의사와 상담하며 질병과 청각 장애를 치료하려 했지만, 별다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그는 연고를 사용하고 75가지의 약을 먹었는데, 상당수에 납이 함유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뉴욕타임스는 전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