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민주·공화당의 대선 후보 경선에서 지난 3월 각각 후보 지명에 필요한 대의원 과반을 이미 확보해 대선 후보 자리를 차지했다.

두 사람은 오는 7월(공화)과 8월(민주) 밀워키와 시카고에서 각각 치러지는 양당 전당대회에서 대선 후보로 공식 지명되는 절차만 기다리고 있다.

미국 역사에서 윌리엄 하워드 태프트(당시 현직 대통령)와 시어도어 루스벨트(당시 전직 대통령)가 출마해 우드로 윌슨과 3자 구도로 맞섰던 1912년 이후 112년만에 전·현직 대통령이 대선에서 재대결을 벌이게 됐다.

하지만 두 전·현직 대통령의 재대결이 미국 유권자들에게는 썩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현재 81세로 역대 최고령 대통령인 바이든 대통령이나 77세로 당선될 경우 재임 중 80세 생일을 맞이하는 트럼프 전 대통령 모두 미국인의 기대 수명(76.33세·2021년 기준)을 이미 넘어선 고령이다.

거기에 더해 두 사람 모두 미국 정치의 분열상을 치유할 통합의 리더십이나 새로운 비전을 각인시키지 못했다는 평가가 많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많게는 70% 이상이 두 사람의 재대결 과정을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답할 정도로 미국은 새로운 리더십을 원하고 있지만 결국 두 사람의 권력 의지와 대중적 인지도, 각 당의 대안 부재 등이 리턴매치 구도를 만들었다.

◇상호 비방 치열한 혼탁 선거전…바이든 고령·경제지표, 트럼프 사법 리스크 최대 약점

대선 양상은 진작부터 혼탁하게 전개되고 있다.

고령 후보간의 대결임에도 선거전은 경륜의 경쟁보다는 첨예한 진영 싸움에 더해 후보가 직접 상대 후보를 공개적으로 비방하는 네거티브 중심으로 흐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연설 때마다 “내 전임자”라는 표현으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임기 중 문제들을 비판하고,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부패한(crooked) 조”, “사상 최악의 대통령” 등을 사용하며 바이든 대통령에 대한 ‘낙인찍기’를 시도하고 있다.

여론조사를 종합하면 현재 판세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다소 우세해 보인다.

다만 바이든 대통령이 지난 3월 국정연설을 시작으로 대선 선거운동 모드로 본격 접어든 뒤 트럼프 전 대통령과의 격차를 좁혀가고 있다.

미국 정치전문 매체 더힐이 작년부터 지난 2일까지 실시된 두 사람의 양자대결 여론조사 680건을 취합해 평균 지지율을 산출한 결과 트럼프 46.5%, 바이든 46.0%의 박빙 양상으로 나타났다.

다만 대선 승패를 좌우할 펜실베이니아·미시간·위스콘신·애리조나·네바다·조지아·노스캐롤라이나 등 7대 경합주에서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위를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온다.

‘4년 더’를 노리는 바이든 대통령은 ‘부자 증세’로 상징되는 친(親)중산층·친(親)노조, 여성의 낙태 권리 보장, 재생에너지를 확대하는 친환경정책 등 민주당 전통의 정책 노선을 고수하며 경합주를 집요하게 공략하고 있다.

이에 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부자증세 반대’, 법인세율 인하 등 공화장 전통의 감세 기조에 더해 남부 국경을 통한 불법 이민자 유입 차단, 대대적인 관세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보호주의 강화, 화석 에너지원에 다시 의지하는 에너지정책 등을 내세우고 있다.

남은 변수로는 트럼프의 경우 4건의 형사기소와 관련된 사법 리스크가 거론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임 중 행위에 대한 형사상 면책 특권을 주장하며 지연작전을 펴고, 보수 우위의 연방 대법원이 신중한 심리 기조를 보이면서 2020년 대선 결과 뒤집기 시도와 관련된 2건의 재판은 대선 이후로 판결이 미뤄질 공산이 커졌다. 기밀자료 유출 건에 대한 공판 역시 일정은 안갯속이다.

결국 현재 뉴욕에서 진행 중인 성추문 입막음 돈 지급과 관련한 회계 조작 혐의 사건이 대선 전에 유무죄 평결이 날 수 있는 유일한 사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로이터 통신과 여론조사기관 ‘입소스’가 4월 4∼8일 실시한 온라인 여론조사 결과 등록 유권자의 64%가 입막음돈 관련 혐의가 적어도 “어느 정도 심각하다”고 봤다.

그러나 CNN이 4월 18∼23일 실시한 조사에서 배심원단이 공정한 평결을 내릴 수 있다고 생각한 응답자는 44%에 그쳤다.

유죄판결이 나오더라도 오히려 진영 갈등이 일어나고 트럼프 지지층 결집을 촉발하는 일이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였다.

바이든 대통령의 경우 고령에 따른 건강 문제와 경제 성적표가 최대 난제다.

3월 국정연설을 기점으로 최근 왕성한 유세 일정을 소화하며 그나마 건강 및 인지력 논란은 다소 잠잠해졌지만, 경제는 바이든 캠프의 기대와 분명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물가 하락과 금리 인하로 올해 미국 경제가 안정적 성장세로 접어들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인플레이션이 견고하게 이어지면서 상반기 중 금리인하는 어려울 것이라는 관측이 팽배해졌고, 1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은 연율 1.6%로 작년 4분기(3.4%) 대비 크게 둔화했다.

그리고 가자지구 전쟁과 관련해 대학가에서 들불처럼 번지고 있는 친팔레스타인 시위도 변수다.

2020년 대선 때 바이든 대통령은 Z세대(당시 18∼23세)와 밀레니얼 세대(24∼39세) 유권자 투표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에게 약 20% 포인트 앞섰고, 이는 그의 승리에 큰 힘이 됐다.

그러나 가자 전쟁 개전 이후 바이든 행정부의 친이스라엘 정책기조는 ‘집토끼’들의 이탈을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가자 전쟁이 대선 때까지 계속되고, 바이든 행정부 친이스라엘 정책에 대한 젊은 층의 반발이 투표 불참 등으로 표출될 경우 바이든 대통령은 상당한 타격을 받게 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경제서 ‘미국 우선주의’ 공통 분모…외교·안보는 ‘동맹 중시’ vs ‘거래의 기술’

누가 되더라도 경제면에서는 ‘자유무역 지상주의’에서 이탈한 ‘미국 우선주의’가 강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10%의 보편적 관세 부과와 중국에 대한 60% 이상의 관세 부과를 예고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백악관의 주인으로 복귀할 경우 한동안 ‘관세 폭풍’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그러나 트럼프가 먼저 기치를 든 미국 우선주의는 미·중 전략경쟁 속에 바이든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의 경제정책에서 공통 분모가 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대중국 고율 관세는 바이든 행정부에 그대로 이어졌고, 트럼프 시절의 자국내 제조업 부활 정책은 보조금을 내걸고 미국내 생산 라인 건설을 유치하는 바이든 행정부의 반도체법, 인플레이션감축법(IRA) 등으로 연결됐다.

최근 바이든 대통령이 동맹국 일본의 기업인 일본제철의 US스틸 인수에 제동을 걸고 나선 것은 상징적인 일이었다.

미중전략경쟁 속에서 핵심 산업 공급망을 자국 내부에 확보할 필요성과 펜실베이니아, 위스콘신, 미시간 등 러스트벨트(rust belt·쇠락한 북동부 공업지대) 경합주 노동자들의 표심을 얻어야 할 현실적 필요성은 두 라이벌이 한 목소리로 자국내 제조업 생산라인 유지·강화를 내세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심 수단이 관세(트럼프)냐, 보조금(바이든)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 두 사람 모두 미국 중심주의에 입각한 자국 제조업 회생에 박차를 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외교·안보 면에서는 차이가 크다.

두 사람 중 누가 앞으로 4년간 거대한 ‘미국호’를 이끌 수장이 되느냐는 미국과 세계질서, 한국의 안보에도 커다란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다시 당선된다면 그는 동맹 중시 외교 하에, 중국-러시아와 세계질서를 둘러싼 각축을 계속 벌일 것으로 전망된다.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 협의체), 쿼드(Quad·미국·일본·호주·인도의 안보 협의체), 한미일, 미·일·필리핀 3자 협의체 등 촘촘한 소(小)다자 협력체를 격자형으로 엮어 중국을 견제하는 기조를 이어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또 한국, 일본과 같은 동맹국에 더 큰 역할을 맡기는 동시에 동맹국에 대한 핵우산 등 억지력 제공 공약도 견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북아의 핫스팟인 대만에 대해서도 군사 지원을 계속 이어갈 것이 확실시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선서 승리할 경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한국, 일본 등 동맹과의 관계는 일대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동맹의 전략적 가치와 자유민주주의 수호를 중시하기보다는 철저한 거래의 논리를 따르게 될 전망이다.

최근 트럼프가 타임지 인터뷰에서 시사했듯 한국이 주한미군 주둔 비용을 대폭 올려주지 않으면 주한미군 철수 또는 감축 카드를 본격적으로 꺼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이는 한반도 정세에도 적잖은 파장을 몰고올 수 있다.

약 2만8천500명으로 유지되고 있는 주한미군 규모와, 북한 핵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한미 정상이 지난해 4월 채택한 워싱턴선언에 명시된 미국의 대북확장억제 공약 등은 트럼프 행정부 2기가 출범하면 더 이상 ‘당연한’ 내용이 아닐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트럼프 전 대통령 참모들의 회고록에는 트럼프 전 대통령이 집권 1기 때 나토 탈퇴와 주한미군 철수를 심각하게 검토한 사실이 적시됐고, 2018년 북미정상회담에서의 전격적 합의로 대규모 한미연합 군사훈련이 중단된 바 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 이념에 기반한 동맹 중심 외교의 지속이냐, 아니면 ‘각자도생’ 하의 계약적 안보 지원 체제로 전환하느냐가 다가오는 대선에서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대북 접근에서는 바이든 대통령이 현상 유지 세력이고 트럼프가 현상 변경 세력이 될 공산이 크다.

바이든 대통령 재선 시 동맹과의 공조를 통한 대북 억지 및 봉쇄가 대북정책의 중심 자리를 계속 차지할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북미정상외교 재시도 여부에 대해선 관측이 엇갈리지만 만약 트럼프 전 대통령이 대북카드로 ‘승부수’를 던질 경우 한반도 안보 구조에 중대 변화를 초래할 수 있다.

일각의 예상대로 북한 비핵화에 대한 청사진 없이 북미 관계를 개선함으로써 북한의 핵 보유를 사실상 용인할 경우 한국 사회에서 독자 핵무장론이 본격 제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어 보인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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