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소셜미디어(SNS)와 TV에는 먹는 방송 ‘먹방’과 술 먹는 방송 ‘술방’이 넘쳐난다.
먹방은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작된 신문화로 꼽힌다. 당시 혼자서 밥을 먹어야 하는 처지였던 일부 젊은이들이 타인의 먹방을 통해 온라인으로 교감하면서 단순히 먹는 행위가 아닌 사회적 활동이 된 것이다. 20여년이 지난 지금, 먹방은 요리를 전문으로 한 ‘쿡방’과 ‘술방’ 등으로 더욱 확산하며 영역을 넓히는 모양새다.
하지만 먹방 시청이 잘못된 식습관이나 건강상의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도 사실이다.
영양이 부족하거나 열량이 높은 음식을 과도하게 탐식하는 영상이 시청자에게도 과식을 유발함으로써 비만이나 섭식장애를 유발할 수 있다는 게 대표적이다.
실제로 최근 국내 연구에서는 이런 우려가 사실로 확인됐다.
연세의대 예방의학교실 연구팀(박은철, 김진현)은 국제학술지 ‘영양학 저널'(Nutrition journal) 최신호에서 한국청소년위험행태조사(2022년)에 참여한 국내 800여개 학교의 중고교생 5만453명(남 2만5천749명, 여 2만4천704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 먹방 시청이 비만 위험을 높이는 연관성이 관찰됐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연구 참여 학생의 체질량지수(BMI)를 저체중, 정상, 과체중, 비만의 네 가지 그룹으로 나눠 지난 12개월 동안 먹방 시청 빈도를 분석했다.
이 결과 남학생의 63.9%, 여학생의 79.2%가 먹방을 시청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먹방을 시청하는 남학생은 저체중(6.9%)보다 과체중(11.2%)과 비만(16.7%)이 월등히 많았으며, 여학생은 저체중(9.5%), 비만(9.2%), 과체중(8.0%) 순으로 편차가 남학생만큼 크지 않았다.
연구팀은 매주 1차례 이상 먹방을 시청한 남학생의 경우 비만해질 위험이 먹방을 전혀 시청하지 않은 남학생에 견줘 22% 높은 것으로 추산했다.
특히 먹방 시청에 더해 흡연, 음주, 잦은 패스트푸드 섭취, 가당 음료 섭취 등의 식습관을 보이는 남학생은 비만일 가능성이 더 높았다.
같은 조건에서 여학생의 비만 위험도는 0.9%로, 남학생만큼의 큰 연관성은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팀은 먹방 시청이 비만으로 이어지는 대표적인 메커니즘으로 ‘따라하기’를 꼽았다.
인플루언서의 먹방 영상을 보면서 빨리 먹기, 많이 먹기, 간식 먹기, 야식 먹기, 자극적인 식습관 등을 따라 하는 대신에 운동과 사회적 상호작용 등 다른 활동에 대한 참여는 줄어듦으로써 비만이 될 위험을 높인다는 것이다.
또한 먹방 시청이 신체의 생화학적 메커니즘에 영향을 미쳐 식욕을 촉진하고, 식욕을 자극하는 호르몬인 그렐린의 분비를 증가시켜 음식 섭취가 증가하는 것도 비만을 부르는 요인으로 지목됐다.
박은철 교수는 “먹방을 시청한 학생 중 38.6%가 자신의 식습관에 영향을 받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면서 “이번 연구에서도 주관적으로 먹방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한 학생들은 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학생들에 견줘 비만이 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았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청소년의 먹방 시청 시간 및 내용을 제한하거나, 먹방에 특화된 영양교육을 실시하는 등의 규제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게 연구팀의 지적이다.
영양교육의 경우 과식과 자극적인 음식을 많이 섭취하면 건강에 좋지 않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에게 알림으로써 먹방, 술방 등의 시청과 나쁜 식습관 사이의 연관성을 차단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아울러 정신건강 측면에서는 먹방 시청을 중독의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해국 한국중독정신의학회 이사장(의정부성모병원 교수)은 “인기를 끌고 있는 먹방이나 술방을 보는 사람의 상당수는 그 자연스러움 때문에 모방의 유혹에 빠지기 쉽다”면서 “하지만 이들 방송은 자극적인 음식 섭취나 과식, 과음이 암묵적으로 즐거워질 수 있다는 잘못된 암시를 줌으로써 정신건강을 해치고 비만도 유발할 수 있는 만큼 중독의 관점에서 문제 행동에 개입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