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공산당 중앙외사판공실 주임(외교부장 겸임)이 26일 중국 베이징에서 양자회담을 갖고 양국 현안과 글로벌 이슈 등을 논의했다.
5시간 30분가량 이어진 두 장관의 만남은 지난 2월 뮌헨 안보회의 계기 회담과 이달 초 전화통화에 이은 것으로 소통을 이어가겠다는 양국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양측은 대만 문제와 미국의 대중 수출규제, 남중국해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등 민감한 현안을 놓고 상당한 견해차를 보이며 곳곳에서 충돌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주임은 “현재 중미(미중) 관계가 총체적으로 안정됐지만 부정적인 요인이 여전히 증가하고 축적되고 있다”며 지난해 11월 샌프란시스코에서 진행된 양국 정상간 합의사항을 양국이 충실히 이행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러면서 “중미 관계의 다음 단계는 양국이 동반자가 돼야 하는지 적수(對手·경쟁자)가 돼야 하는지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에 답하는 것”이라며 미국이 중국을 중요한 적수로 여긴다면 양국 관계에는 문제만 가득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왕 주임은 대만 문제는 양국 관계에서 넘어서는 안 되는 첫 번째 레드라인(紅線·마지노선)이라며 ‘하나의 중국’ 원칙과 미중간 3대 주요 공동성명(수교성명 등) 준수 등을 요구했다.
그러면서 “어떤 방식으로든 대만 분리 독립 세력에 잘못된 신호를 보내지 말고 바이든 대통령의 ‘대만 독립 반대’ 약속을 진심으로 존중하라”고 요구했다.
왕 주임은 “중국 인민의 발전권은 양도할 수 없다”며 디리스킹(de-risking·위험제거) 을 통한 미국의 대중 수출통제 조치에 대해서도 “공정한 경쟁이 아니라 견제이며, 위험 제거가 아니라 위험 창출”이라고 맹비난했다.
그러면서 “중국의 ‘과잉생산론’에 대한 조작을 중단하고 중국기업에 대한 불법제재, 미국 무역법 301조를 통한 관세부과 등을 중단하라”고도 요구했다.
왕 주임은 “아시아 태평양 지역은 강대국들의 전쟁터가 돼서는 안 된다”며 미국이 본격화하고 있는 중거리 미사일 개발과 배치를 중단함으로써 중국의 전략적 안보이익 훼손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블링컨 장관은 “미중 관계는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양자 관계이며, 이 관계를 책임감 있게 관리하는 것은 미국과 중국의 공동 책임”이라고 말했다고 중국 외교부가 밝혔다.
블링컨 장관은 “미국은 계속해서 하나의 중국 정책을 추구하고 있으며 ‘대만 독립’을 지지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그러면서 “미국은 중국 체제를 바꾸려 하지 않고, 중국과 충돌할 의도가 없다”며 “중국과의 디커플링(decoupling·공급망 등 분리)을 추구하지 않으며 중국의 발전을 억제하려 하지 않는다”고 밝혔다고 중국 외교부는 강조했다.
블링컨 장관은 “중국이 발전하고 성공하는 것은 세계를 위해 좋은 일”이라며 “양국 정상간 공감대를 바탕으로 전진하고 대화와 소통을 강화하며 차이점을 효과적으로 관리하자”고 말했다.
이를 통해 “오해와 오판을 방지하고 미중 양국의 안정적인 발전을 촉진할 의향이 있다”고 밝혔다고 중국 외교부는 전했다.
또 양국 장관은 우크라이나 문제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충돌, 북한·미얀마 등 문제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는게 중국 외교부 설명이다.
다만 이 사안들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 내용은 공개하지 않았다.
그러나 블링컨 장관은 중국의 과잉생산, 남중국해 문제, 중국의 인권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등에 관한 미국 입장을 피력하며 중국을 압박한 것으로 전해졌다.
매튜 밀러 미 국무부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블링컨 장관은 미국이 인권과 경제 문제를 포함해 우리와 동맹국, 파트너들의 이익과 가치를 계속해서 옹호할 것임을 강조했다”고 밝혔다.
또 미국의 한 당국자는 블링컨 장관이 왕 주임과 회담에서 “중국이 러시아를 지지하는 데 대한 우려를 표명했다”고 밝히며 양측이 중동과 한반도 내 추가 긴장 고조를 막을 필요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고 AFP 통신이 전했다.
양국은 양국 군사분야를 포함해 각 분야의 교류 협력을 계속하고 마약 통제(펜타닐), 기후변화, 인공 지능 분야에서 협력을 계속해 나가기로 했다.
블링컨 장관은 왕이 주임과 회담한 데 이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예방했다.